각 당이 정치권 쇄신이니 혁신이니 하고 외쳐대지만 예산심의는 여전히 염불보다 잿밥으로 흐르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나랏돈이 허투루 쓰이는지를 감시하는 본연의 의무를 수행하기는커녕 오로지 정권쟁탈전에서 표밭공략에 혈안이 돼 서로가 샅바싸움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예산 부풀리기와 끼워넣기가 문제다. 새누리당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342조원에다 무상보육과 반값등록금 같은 대선 공약 이행에 필요한 예산 3조원을 추가로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통합당은 한술 더 뜨고 있다. 공약 관련예산으로 무려 12조원을 증액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전체 예산의 1%를 신임 대통령 몫으로 따로 떼어놓자는 야당의 주장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구체적인 지출내역도 모른 채 예산을 대충 통과시킨다면 국회의원의 책무를 스스로 위반하는 초법적 행위이다.
여야 정치권은 당초 대선일정을 감안해 새해 예산안을 11월22일까지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대선 후보 등록(11월25~26일) 이후에는 예산심의가 사실상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 앞에 약속한 예산안 처리시한은 고사하고 법정시한(12월2일)조차 지킬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예산의 졸속심의와 증액이 일으킬 내년의 후유증이 걱정이다. 4조8,000억원의 적자재정을 편성한 정부안은 그렇지 않아도 장밋빛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는 성장률 4%를 전제로 내년 예산을 짰지만 너무 낙관적 전망이라는 게 중론이다. 대선공약까지 감안할 경우 적자폭이 더 커질 것은 불문가지다. 예산심의는 국회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책무다. 더욱이 이번은 19대 국회의 첫 예산심의이고 경제상황은 난국이다. 그런데도 과거 국회와 달라진 것이 없으니 국민들 입에서는 싹수가 노랗다는 말이 나오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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