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서경이 만난 사람] 강창희 국회의장

대선 앞둔 국회, 시간 없어서 오히려 잘 굴러갈 겁니다<br>국정감사 기간 줄어들고 예산심의 늦지 않을 것<br>정부에 안 끌려다니려면 국회가 입법기술 키워야<br>국회의원 연금제 고치고 불체포 특권도 수술 필요



"국회의장이 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뭘 어려워해요. 이리 가까이 앉아요. 나는 태평양을 둔 것처럼 멀게 앉으면 이야기가 안 되더라고. "

강창희(66ㆍ사진) 신임 국회의장은 나이보다 젊었다. 손은 의자를 꼭 쥐거나 자유롭게 허공을 그렸고 목소리는 방 밖으로 새어나갈 정도로 컸다. 답변하는 태도도 거침이 없었다. '박근혜' '전두환' 등 의 이름이 등장하자 "물어볼 줄 알았다"며 피하지 않았다.

그는 이한구 새누리당,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보다 각각 한 살과 네 살이 적다. 하지만 그는 9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러 6선 고지에 앉은 31년 경력의 정치인이다. 1981년 민주정의당(새누리당의 전신) 사무총장 보좌역으로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뎠고 3번의 낙선을 제외하고도 6선을 거쳐 국회의장에 앉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대 국회의 문을 연 강 의장을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만났다.

대선의 해 국회 의외로 쉽게 풀려

대통령 선거를 앞둔 국회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보통 같으면 합의할 일도 여야의 정쟁 대상이 되기 일쑤다. 강 의장은 이런 우려를 정반대로 받아 넘겼다. "그동안 국회 경험을 보면 대선이 있는 해에 의외로 쉽게 풀린 경우가 많았다. 대선까지 시간이 없기 때문에 여야가 오래 끌지 않는다. 국정감사도 단축하고 예산 심의도 늦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정쟁과 민생을 구분해 해결할 생각이다. "여야가 대선 후보를 내놓았는데 상대 당을 트집잡아서 질질 끌면 자기네 후보에 유리하겠습니까. 민생 현안에 관한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법안은 내가 다그쳐서라도 해결할 것입니다. 정치 쟁점은 민생을 해결하고 나서 싸우면 됩니다. 그건 국민에게 폐해가 안 가요."

강 의장은 민생을 돌보기 위한 국회의 입법능력을 강조했다. "국회의원이 '이것을 어떻게 입법해야 내 의도대로 적용되는가' 하는 입법기술이 부족합니다. 보좌진 몇 명으로는 실력이 모자라서 행정부에 끌려다닙니다. 그래서 국회에 입법조사처와 예산정책처가 생겼지만 아직 의원이 잘 활용할 줄 몰라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는 보좌관도 적고 보좌기구가 없던 시절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강 의장은 1986년 최저임금법을 발의했다. 당시 서울 구로공단에 한 달에 10만원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그는 최저임금은 '매년 결정한다'라는 법조문을 주장했지만 당시 경제기획원과 청와대는 '필요에 따라 결정한다'로 맞섰다. 아직은 수출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하는데 매년 최저임금을 정하면 노동쟁의가 발생한다는 정부 측의 논리였다. 그러나 그는 그해 마지막 날 최저임금법을 자신의 생각대로 통과시켰다. 그는 "당시 사공일 청와대 수석과 싸움까지 붙었지만 다행히 노동부가 근로자 편을 들어서 법안을 만들 때 도와줬다"고 회상했다. 당시 전문적인 노동부 관료가 물밑에서 돕지 않았다면 최저임금법은 경제기획원 뜻에 따라 껍데기 법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석기·김재연 제명은 자초한 일

19대 국회 개원과 함께 시작된 국회의원 자격심사에 그는 '국민의 합의'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이석기ㆍ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의 심사가 예고됐지만 야당에서는 김형태 새누리당 의원 등의 성추행 의혹도 심사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왜 이석기ㆍ김재연 두 의원에 대해 여야가 심사에 합의했을까를 생각하면 된다. 국민이 합의한 것이다. 국민적 상징인 '애국가도 안 부른다. 국기에 대한 경례도 안 한다'는 발언이 국민을 자극했고 국민이 여론으로 압박하니 여야가 합의한 것이다. 지금 의원의 국가안보 개념을 심사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까지 나오는데 어떤 면에서는 두 의원의 행동이 자초한 결과"라고 말했다.

여야의 특권 폐지 역시 국민적 상식에 기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을 잘하면서 특권을 누리면 국민들이 별로 말을 안 할 것"이라면서 "패싸움하지, 부정부패하지, 민생은 돌보지 않고 국민한테 안하무인으로 대하면서 특권까지 누리면 국민이 좋아하겠나"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국회의원 120만원 연금제도의 수술을 강조했다. "국회의원은 몇 선을 해도 공무원 연금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는 국회가 예산을 짜면서 해마다 전직 원로 의원에게 줄 돈을 마련했다. 그것을 법제화하면서 임기 하루만 해도 120만원을 주도록 한 것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국회의원이라는 게 당선을 위해 전재산과 모든 힘을 투자하지만 낙선하면 돈이 바닥 나 힘든 사람이 많다"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전직 원로에 한해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없애야 할 특권으로 국회의원은 법을 어겨도 회기 중에 체포되지 않는 '불체포 특권'과 설령 체포가 됐다고 해도 세비는 그대로 받는 제도를 꼽았다.

내가 친박인 것 모르는 사람 있나

강 의장은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2004년 한나라당 대표로 나서도록 처음 이끈 사람이다. 그 이후로 그는 계속 '박의 남자'로 불렸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와 박 전 위원장이 늘 부드러운 관계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는 3당 합당을 반대하며 민정당을 떠난 후 11년 만에 한나라당에 돌아왔다. 박 전 위원장은 당시 이회창 총재 시절 부총재였지만 곧 당을 나갔고 강 의장은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몰두했다.

두 사람이 인연이 닿은 것은 2004년 '노무현 탄핵 역풍' 직후 열린 전당대회였다. 그는 몇 번이나 고사하는 박 전 위원장을 혼자 찾아가 "아버님 같으면 어떻게 판단하셨겠는가"라는 말로 그를 이끌어냈다. 2006년 총선은 물론 2007년 대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의 제의를 물리치고 박 전 위원장을 도우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강 의장은 사실상 홀로 친박근혜계 공천심사위원으로 들어갔다. 당규에 따른 일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책 '열정의 시대'에서 "(친박 측이) 그런 공천심사위 구성에 합의해준 것은 친이명박계 측이 전횡을 휘두르도록 만들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솔직히 박 전 위원장이 원망스러웠다"고 밝혔다. 그가 세번째로 낙선한 그 총선에서 박 전 위원장이 '친박연대' 지지자에 휩싸여 예정한 강 의장의 지원유세조차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번 총선에 당선됐고 친박의 원로급 중추로 자리매김했다. 중립이 생명인 국회의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강 의장은 "내가 친박인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국회의장이 됐기 때문에 새누리당에서 당적을 이탈했다"며 중립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박 전 위원장이 대선 후보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박 전 위원장에 대해 언급하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인데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를 지키는 애국심을 가진 분이 되는 게 제일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5공 출신 뿌리 인정하지만 1987년 직선제 개헌 주장 등 민주화·정당정치 지켜와

■ 강 의장이 보는 '5공 막내' 꼬리표

"군대에 있어야 할 친구인데 어떻게 여기 왔어."

지난 1981년 1월15일 청와대. 전두환 대통령이 강창희 당시 민주정의당 사무총장 보좌역을 보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전 대통령은 자신이 주도한 민정당 창당대회를 앞두고 당직자를 불러 임명장을 주려는 참이었다. 그 자리에 육군사관학교 후배로 평소 눈여겨봤던 강창희 중령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65년부터다. 육사 축구선수였던 강창희 국회의장이 동기들과 연습할 때면 선배인 전두환 당시 중령은 뉴욕제과 크림빵을 사 들고 오고는 했다고 한다. 전 중령은 큰 키로 운동장을 휘젓던 강창희 생도에게 관심을 보였다.

인연은 육사 출신 결사체로 불린 '하나회'의 수장과 일원으로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강 의장에게는 '5공 막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그는 5공이라는 뿌리는 인정한다. 하지만 민주화와 정당정치를 지켰다는 자부심에 있어서는 차별화를 분명히 한다. 강 의장은 "내가 5공 당시에 정치를 시작했으니 5공 출신이다. 하지만 정치를 시작한 시점이 중요한가, 어떤 정치를 해왔느냐가 중요한가. 내가 그동안 민주화에 반하는 말이나 행위를 해왔으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나"고 말했다.

강 의장은 군인 출신임에도 권위에 도전한 의원으로 기억된다. 자민련 부총재이던 2002년 민주당이 자민련에 의원을 꿔줘서 교섭단체로 만들 때 이에 반대해 자민련에서 제명을 당했다. 민정당 의원이던 1987년 6ㆍ29선언 직전에는 시위대에 군을 투입하겠다는 청와대를 만류하고 직선제 개헌을 주장했다.

강 의장은 자신이 책에 전 전 대통령을 '정치적 멘토'라고 썼다고 알려졌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책에 "전 전 대통령은 언젠가 자신의 집권 과정에 대해 역사적 증언을 할 때가 있을 것"이라면서 "현명한 국민은 역사의 교훈을 얻을 것"이라고만 적었다.

하나회에 대해 강 의장은 자신의 저서에서 "창군 역사가 짧은 당시에 하나회는 초기에 선후배 간 친목단체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다가 군 내부의 파벌로 자리잡았고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정치색을 지닌 조직으로 발전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하나회 척결을 수긍했다. 그는 "하나회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전 전 대통령이 하나회를 통해 주도한 12ㆍ12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으면서 "김 전 대통령이 하나회를 척결한 것은 12ㆍ12 같은 쿠데타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이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12ㆍ12는 우발적 사고가 원인이 되었기 때문에 계획에 따라 치른 5ㆍ16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두환이라는 후배를 남달리 신임하며 키웠고 전 전 대통령에게는 현직 대통령이 시해당하는 10ㆍ26이라는 우발적 사건이 권력을 잡을 동기와 기회를 준 측면이 컸다는 게 나의 시각입니다."

강 의장은 '5공 막내'라는 꼬리표에 이렇게 응수한다. "국회의장 선출에서 (야당 의원의 반발로)지지율이 69%였는데 임기 말에는 96%로 만들겠습니다. 1등으로 입학하지는 않았어도 졸업은 96점을 받겠습니다."

◇ 약력

▦1946년 대전 ▦1969년 육군사관학교 졸업(25기) ▦1979년 육군대 교수 ▦1980년 육군 중령 예편 ▦1981년 민주정의당 조직국장 ▦1983년 국무총리 비서실장 ▦1988년 한국보이스카웃연맹 중앙이사 ▦1997 자민련 사무총장 ▦1998년 제1대 과학기술부 장관 ▦2000년 자민련 부총재 ▦2001년 한나라당 부총재, 최고위원 ▦2002년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2008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 ▦제11ㆍ12ㆍ14ㆍ15ㆍ16ㆍ19대 국회의원(대전 중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