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문화' 이슈로 우리 사회가 연일 뜨겁다. 언론에는 갑의 횡포로 인한 피해 사례가 끊임없이 보도되고 사람들도 모이기만 하면 특정인과 특정 기업을 비난하기 바쁘다. 특정 계층에 돌을 던지기만 하면 우리 사회에서 갑을 문화가 사라질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마치 나는 갑이 아닌 것처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갑을 관계는 상대적 개념이다. 우리는 때론 갑이 됐다가 때론 을이 된다. 때문에 지금 비판받는 갑을 문화는 특정 집단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갑을 문화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인 양, 특정 계층만 고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논어에 '선악개오사(善惡皆吾師)'라는 말이 있다. 선과 악은 모두 나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악함을 비난만 하지 말고 나에게 그러한 것이 있는지 반성해보라는 의미다. 그래야 본인도 사회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을 문화도 갑만 탓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개선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 간 관계를 보자. 기업에도 영원한 갑과 을은 없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이 갑이고 중소기업이 을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1차 중소협력업체는 대기업에 대해선 을일지 몰라도 2ㆍ3차 협력업체엔 종종 슈퍼갑으로 돌변한다. 실제로 지난해 중소기업연구원이 조사해보니 부당한 단가 인하를 경험한 비율이 1차 협력업체보다는 2차 협력업체가, 2차 협력업체보다는 3차 협력업체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을의 심정을 잘 알만한 중소기업이 갑의 지위에 서자 소위 갑질을 더 많이 한 것이다. 대기업이 을이 되는 경우도 많다. 실제 핵심 원천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 앞에서는 대기업도 고개를 숙이게 된다. 소비자 앞에서 을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기업 내 조직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대리점주도 본사에는 을이지만 대리점 종업원에게는 갑이다. 갑의 입장이 된 대리점주는 어떠한가.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종업원의 임금을 체불하거나 폭우나 폭설이 내려도 목숨을 건 배달을 강요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직장 내 관계도 다르지 않다. 팀장은 임원에게 을이지만 팀원에게는 갑이다. TV를 보면 임원에게 험한 소리를 들은 팀장이 말단 사원에게 그 분풀이를 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갑이 되면 을이었던 시절을 잊는 듯하다.
얼마 전 회사 말단 사원으로 시작해 임원이 된 경제계 인사들과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이들에게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물으니 주변 사람, 특히 비서, 운전기사, 골프장 캐디에게 잘 대해준다고 한다. 성공한 사람은 회사 내 을이었을 때의 기억을 잊지 않고 갑이 됐을 때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더욱 존중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갑을 문화 개선 캠페인'에 동참해보자. 남 탓만 하지 말고 자신이 소비자나 직장 상사로서 갑일 때를 되돌아보고 을의 입장에서 생각하자. 나도 갑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문화가 조성될 때 '편 가르기'식 갑을 문화는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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