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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업생존 대화에 달렸다
입력2006-02-21 16:43:26
수정
2006.02.21 16:43:26
상장회사들의 실적발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외국계 증권사가 흥미로운 전망보고서를 내놓았다. ‘Time for the Korean premium’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한국증시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걷어내고 ‘코리아프리미엄’을 형성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담고 있다. 기업이익의 안정적 증가와 투자여건 개선 등으로 기업 재평가가 지속되면서 프리미엄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우리 기업들은 과연 ‘코리아프리미엄’을 누릴 준비가 돼 있는가. 불행하게도 우리 기업환경을 보면 여전히 글로벌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아직은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에 주력해야 할 단계라는 반론이 우세한 편이다.
기업은 시민단체로부터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하라는 공세에 시달리고 있고, 정부는 여러 차례 규제를 풀겠다고 밝히면서도 실제로는 ‘관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들 또한 반기업정서가 문제라느니, 경제교육이 엉망이라느니, 한국경제의 앞날이 걱정이라는 등의 보도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척도는 다양하다. 매출ㆍ자본건전성ㆍ시장점유율ㆍ성장가능성 등이 일반적인 잣대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진 기업환경을 고려한 새로운 잣대가 마련돼야 한다. 특히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시급히 요구된다. 기업이 입맛대로 상대를 택해 정보를 전달하는 ‘선택적ㆍ일방적’ 대화법으로는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게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외국인투자가들과 소액주주들의 간섭은 늘고, 기업행태를 감시하는 이익단체는 점점 적대적으로 돼가고 있으며, 환경단체들은 사회적 책임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인터넷이 몰고 온 새로운 미디어환경은 투자자들에게 잘 짜여지고 세밀하게 준비된 기업정보를 실시간으로, 지속적으로 보내거나 답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변한 시장환경에 제대로 대처하는 기업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 기업들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인식 부족은 증권시장의 정보 흐름에서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공시의무가 강화됐다고 하지만 정정공시가 더 큰 폭으로 늘면서 오히려 공시의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다. 소위 고급정보는 일부 기관투자가들에 집중되고 개미투자자들은 확인되지 않은 출처불명의 루머들에 휘둘리고 있다. 사내에 IR 전담부서와 직원을 두고 지속적이고 정례적으로 기업정보를 공개하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IR 전담부서가 있는 기업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형식적 운영에 그쳐 기업과 주주간 실질적인 정보유통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커뮤니케이션 실패 사례는 선진국에도 있다. ‘유전적으로 수정된 식량’ 생산계획을 세웠던 미국의 유명 농화학업체는 환경단체의 거센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주주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사업을 접어야 했다. 미국의 한 자전거메이커는 인터넷 자전거동호회 사이트에 뜬 “이 회사 자물쇠가 볼펜심으로 열린다”는 글을 방치했다가 전국에서 모여든 고객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사례일 뿐 대부분의 선진기업들은 이해당사자와의 대화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보도에 따르면 BTㆍ포드 등 많은 글로벌기업들이 이미지 관리에 일찌감치 눈을 떠 주주ㆍ고객ㆍ언론ㆍ시민단체ㆍ정부 그리고 직원 등의 이해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이들 회사의 중역들은 이해당사자들과의 대화에 업무시간의 30~40%를 할애한다고 한다. 대다수 미국기업들은 규모에 상관없이 사내에 커뮤니케이션팀을 두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기업만의 노력으로 이뤄질 수 없다. 정부ㆍ시민단체ㆍ소비자 등이 모두 힘을 보태야 가능한 일이다. 반기업정서 해소는 기업 스스로 해법을 제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방법은 기업운영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적절한 의사소통 방안을 마련해 지속적으로 대화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주변의 감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흉내만 내는 대화법으로는 결코 원활한 정보전달이나 의사소통이 이뤄질 수 없다. 대화법이 기업의 중요한 생존전략으로 등장한 만큼 능동적 대처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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