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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히 젖어 있는 판타지의 세계로…

싱가포르 비엔날레 등 잇단 해외전시 앞둔 이기봉 국내서 개인전<br>'젖은 정신' 주제로 증기·물·안개등 다뤄<br>소격동 국제갤러리서 오늘부터 한달간

이기봉

‘End of the End’

‘Wet Psyche’

국내 미술계가 해외 미술시장으로 눈돌리기에 한창이다. 최근 몇 년간 해외 아트페어와 국제 비엔날레는 백남준 이후 명맥이 끊기다시피한 ‘월드스타’ 탄생의 기반을 만들어줬고, 이 속에서 주목할 대상으로 급부상한 작가 중 하나가 이기봉(51)이다. 아트페어로 이름을 알리던 그는 지난해 독일 칼스루헤의 ZKM미술관에서 열린 ‘아시아 현대미술전’에서 작품을 선보인 것을 기점으로 유럽의 큐레이터들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베를린 세계문화관 전시에서 호평을 받은 데 이어 올해 말 영국 월설의 뉴아트갤러리로 순회전이 이어질 예정이다. 다음 달에는 ‘2008 싱가포르 비엔날레’에 출품을 앞두고 있으며 11월에는 헬싱키 KIASMA 현대미술관에서 초청전을 열어 세계적 명성을 공고히 할 참이다. 연이은 해외 미술관 전시를 앞둔 그가 3년 만의 국내 개인전을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29일부터 한달 동안 연다. 서양 미술계, 특히 유럽 화단은 작가의 철학적 사유와 판타지ㆍ몽상에 대한 은유적 표현을 높이 평가한다. 바로 이 점이 이기봉의 몸값과 유명세를 치솟게 했다. ‘젖은 정신(The Wet Psyche)’라는 전시 제목처럼 증기ㆍ물ㆍ안개 등 ‘젖은 이미지’가 작가의 지적인 유희를 따라 일관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1층 전시장의 ‘독신자의 침대(Bechelor’s bed)’는 아래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붉은 레이저를 자극하는 설치작품. 작가는 “일상에서 잠으로 넘어가는 현실과 꿈의 모호한 경계의 순간을 다루며 신체의 감각기관이 아닌 정신의 감각기관을 건드리고자 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서양미술사에서 ‘독신자’(bechelor)라는 단어는 초월자와 소통하는 성직자에 상응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예술가에 해당하는 중요한 의미로 사용돼 왔다. 수조 속을 떠다니는 책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딱딱하고 어려운 철학책이 나비처럼 유려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대형 회화작품도 선보였다. 1cm 두께의 아크릴을 사이에 두고 중첩된 이미지의 나무를 그린 흑백 회화는 나무를 감싸는 안개의 습한 기운이 몽환적이다. 작가는 “나무라는 사물보다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안개에 집중해 달라”고 당부한다. 세계적 디자이너 질 샌더 등 해외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으로 국내에서의 공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외에도 작가의 작업실 책장에 집을 지었다 떠난 새의 일화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 ‘엄마(Mother)’등 일상 속 사색까지 포착해 낸 작가적 재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02) 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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