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경차와 국산 대형차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지는 양극화가 일정 부분 나타난 데 이어 올 들어서는 경차와 수입차만 판매가 신장하는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올해 1~5월 경차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3,000대 이상 증가한 8만8,863대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7%나 증가한 수치다.
이 기간 국산 자동차의 총 판매대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4% 줄어든 가운데 유독 경차만이 기록적인 판매 증가세를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경차를 뺀 모든 차급의 국산차가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수입차는 이 기간 5만1,661대가 팔리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나 판매량이 급신장했다.
수입차는 가격보다는 고급감이나 브랜드 이미지, 성능, 개성 등이 선택의 기준이다. 국내 자동차 소비자의 선택이 '최저가 차급'인 경차와 '품위나 개성이 가격보다 중요한' 수입차로 양분된 것으로 해석된다.
자동차 업계의 한 전문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주 값싼 상품과 아예 비싼 고급품만 잘 팔리는 현상이 소비재시장에서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면서 "소득의 양극화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현상에 따라 올해 1~5월 전체 자동차 판매대수 중 경차 비중은 지난해보다 3.2%포인트 상승한 15.6%까지 올라갔다. 업계 관계자는 "경차 비중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면서 "올해는 경차 말고는 모든 차급이 안 팔린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의 경우 올 5월까지 '국민 준중형'으로 불리는 '아반떼' 판매가 지난해 동기 대비 15.5% 줄은 것을 필두로 '그랜저(-22.2%)' '제네시스(-26%)' '에쿠스(-16.8%)' 모두 역신장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역시 '포르테(-48.6%)' 'K7(-44.4%)' '쏘울(-52.8%)' '쏘렌토R(-34%)' 등 주력 차종의 판매가 급격히 꺾였다. 한국GM도 마찬가지로 '쉐보레 스파크' 판매는 지난해 동기 대비 8.1% 늘었지만 준중형 '쉐보레 크루즈'와 준대형 '알페온'는 각각 38%, 40.8% 판매가 줄었다.
이 결과 경차를 만드는 회사인 기아차와 한국GM의 경우 수익성의 지표인 '제품 믹스(차급별 판매 비중)'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고급차 판매 비중이 높아야 수익성 측면에서 유리한데 올 들어서는 경차 비중이 확 높아졌기 때문이다.
기아차의 경우 5월까지 전체 판매 중 경차 비중이 지난해에 비해 6.9%포인트 높아진 31.6%로 확대됐다. 대략 세 명 중 한 명은 경차를 산 셈이다.
그러나 수입차는 물량뿐만 아니라 판매 내용도 '충실'하다. 올해 1~5월 베스트셀링카 톱5 가운데 4개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차종이다. 올 들어 가장 잘 팔린 수입차인 BMW '520d(6,350만원)' '528i(6,840만원)', 메르세데스-벤츠 'E300(6,880만~8,090만원)' 등이 국산 최고급 차인 현대차 에쿠스 기본형 가격과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동차 소비의 양극화가 얼마나 심하게 진행됐는지 잘 알 수 있다.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국산 준중형 차급에 대한 수요마저도 경차로 상당 부분 넘어간 것은 중산층과 서민의 경제적 환경이 더욱 악화된 데 따른 것"이라면서 "반면 수입차를 살 수 있는 계층의 경제 환경은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도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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