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택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중흥·호반·반도·우미건설 등 중견 건설사들이 지난 5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택지 한 곳에 최대 30개가 넘는 계열사와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택지를 따간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중견 건설사들의 행태에 대해 일종의 담합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이를 바로잡아야 할 국토교통부와 LH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고 수년째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계열사 30개 넘게 동원해 떼청약 일삼는 중견사들=14일 정성호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LH에 요청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흥건설은 지난해 11월 4일 실시된 광주전남혁신 3-3구역 택지 청약에서 중흥종합건설·중흥건설·중흥엔지니어링·중흥에스클래스개발·중흥에스클래스 등 무려 31개의 계열사를 동원했다. 당시 호반건설도 호반리빙·호반주택·호반비오토 등 19개 계열사를 동원했으며 우미건설(18개), 대방건설(13개), 우방건설(10개) 등 이들 5개 건설사와 관련된 업체만 81곳에 달했다. 해당 택지는 10개의 계열사를 동원한 대방건설 계열의 대방주택이 가져갔다.
최근 공공택지에서 분양 물량을 대거 쏟아내고 있는 중견 건설사 대부분이 계열사와 페이퍼컴퍼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흥은 지난 5년간 최대 31개 계열사를 동원해 76개 필지에 청약 신청을 했으며 24개 필지에 당첨됐다. 이중 계열사에 전매로 넘긴 것만 14건이다. 호반은 최대 23개 계열사를 동원해 96개 필지에 신청했으며 15개 필지에 당첨돼 5건을 계열사에 넘겼다. 반도는 최대 27개, 우미는 최대 18개 계열사를 동원했다. 이들 뿐 아니라 대방, 한양건설 등 대부분의 중견 건설사들이 이 같은 방법을 쓰고 있다.
올해도 상황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 31일 실시된 인천 가정 14-5구역 택지 공급에는 호반 계열인 티에스주택이 당첨됐다. 호반은 당시 무려 23개의 업체를 동원했다. 앞서 같은 달 24일에 진행된 화성동탄2 1-98구역 분양에는 27개 계열사를 동원한 반도 계열의 한숲개발이 당첨됐다. 2월에 실시된 김포한강 1220-0구역 공급에서는 일신이앤씨가 택지를 따내 계열사인 아이에스동서에 전매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수십 개의 계열사를 편법으로 동원해 공동주택용지를 신청하는 것은 대단히 불공정한 행위로 사실상의 담합"이라며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LH가 시급히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장 다른 중견사와 대형사…손 놓은 LH와 국토부=이 같은 공공택지 '떼청약'에 대한 대형사와 중견사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우선 대형사들은 중견사들의 떼청약으로 사업성 있는 토지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행 제도를 개선해 1사 1필지 신청으로 제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견사들은 주택 사업마저 대형사에 뺏길 경우 생존이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사들이 해외사업이 잘 나갈 때는 공공택지 입찰에 대해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세종시의 경우 대형사들이 낙찰을 받았다가 사업성이 없다며 포기한 것을 중견사들이 거둬들인 경우도 있다"고 반박했다.
공공택지 입찰을 둘러싼 대형사와 중견사의 입장이 서로 갈리는 가운데 중간에서 이를 조율해야 할 정부와 LH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택업계 한 관계자는 "LH는 택지 경쟁률 상승을 위해 수수방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국토부도 이와 관련해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내놓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불공정한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것은 현행 주택법상 주택등록 사업자로 일정 요건(자본금 3억원 이상 등)만 갖추면 건전한 기업인지 아닌지 불문하고 택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수억원의 분양대금을 내는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시행 및 시공 실적 등을 고려해 공공택지 입찰 자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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