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에서는 신 위원장이 예상 밖으로 '속전속결' 식의 사태해결에 나선 것을 두고 임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중징계 건의를 수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임 회장이 조만간 전격적으로 사퇴를 표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다만 임 회장이 금감원의 중징계 근거를 '오해'라고 맞서며 명확하게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나섰던 만큼 금융위에서 금융 당국과 임 회장 간 마지막 논리 대결이 예상된다. 임 회장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쥔 금융위는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 기획재정부 차관 등을 포함해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국내 금융정책의 정점에 있는 의결기구다.
◇강압적 인사 개입 없었다…임 회장의 반박 논리는=금감원이 지적한 임 회장의 '죄목'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은 자회사인 은행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하고 이 같은 인사 개입이 결과적으로 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의 파행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박세춘 금감원 부원장보는 "자회사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해서 유닉스로의 전환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되는 IT본부장을 교체하도록 한 것은 자회사의 건전경영을 저해한 부분이기 때문에 제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최근 KB금융지주 임원들을 고발했던 고발장에 따르면 임 회장은 기존의 은행 IT본부장이 향응 접대 등을 받은 의혹이 있다며 이 행장에게 교체할 것을 수차례 권고했다. 이 행장은 "감찰 결과 향응 접대 의혹이 없다"며 교체를 주저했지만, 결국 임 회장의 뜻을 수용한다. 이후 사실상 임 회장의 지시로 새로 임명된 은행 IT본부장은 유닉스 전환을 위해 이사회 서류를 조작하는 등 범죄행위를 주도했다.
하지만 임 회장은 지주 회장으로서 은행 IT본부장을 교체하도록 권고한 것이 자회사에 대한 부당한 인사 개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낸다. 금감원이 서류조작 과정에서 임 회장의 직접적 개입 근거를 밝히지 못한 것도 임 회장 측의 중징계 반박 논리다. 은행 서류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KB지주와 은행 임원들도 서류조작 등과 관련해 임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은 끝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KB지주가 주전산기 전환을 밀어붙인 동기가 여전히 석연치 않다는 점도 중징계 근거로 미약한 부분이다.
금감원은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서류조작 등이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했으나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지주가 유닉스 전환을 강행했느냐는 끝내 밝히지 못했다. 임 회장은 이 같은 근거를 들어 자신에 대한 마지막 소명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 회장 반발 불구 금융위 중징계 가능성 높아=이 같은 임 회장 측의 대응 논리는 법리적으로 보면 일견 타당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최초 임 회장에 대해 경징계를 결정한 것도 이 같은 임 회장의 대응 논리가 먹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금융 당국의 징계 흐름은 법리적 판단보다는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자질'에 대한 문제제기 성격에 더 가깝다. 이와 관련해 박 부원장보도 "KB의 경영정상화가 잘되고 있었다면 징계를 위한 징계는 필요 없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금감원 제재심의위 이후에도 KB 수뇌부가 다시 내분 사태를 벌여 여론이 급속히 악화하고 임 회장이 이번 KB 사태 과정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리더십을 보이지 못한 부분 등이 사실상 중징계의 '정성적 평가'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정부 들어 금융위와 금감원 수뇌부의 공조관계가 비교적 양호했던 점을 고려하면 최 원장의 이 같은 판단은 사실상 신 위원장과의 교감 아래 이뤄졌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신 위원장이 4일 최 원장의 '중징계' 건의 이후 5일 오전 바로 금융위 비상소집을 지시한 것도 임 회장에 대한 중징계가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유추하게 하는 대목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중징계 근거에 대해서는 다툼이 있을 수 있겠지만 KB의 경영안정화를 위해 무엇이 정말 필요한 것이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국 내에서도 공감대가 이뤄져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금융위 결정 이후 임 회장 소송 통해 명예회복 나설 듯=기재부 차관까지 지낸 고위관료 출신인 임 회장 역시 이 같은 금융 당국의 흐름을 모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임 회장이 금융위가 열리기 전 사퇴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하지만 엘리트 관료에서 국내 최대 금융그룹 수장까지 오른 임 회장의 입장에서 보면 '명예회복' 문제가 누구보다 절실할 수 있다. 임 회장은 앞서 4일 자신에 대한 중징계가 통보되자 "적절한 절차를 통해 정확한 진실이 명확히 규명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권리구제 절차를 밟을 뜻을 밝힌 바 있다.
금융위에서 중징계가 확정될 경우 임 회장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구제 방법은 이의신청·행정심판·행정소송 등 세 가지가 있다. 현행 규정상 이의신청을 하려면 제재통보서 또는 검사서를 받은 날로부터 1개월 이내 신청의 취지와 이유를 기재한 신청서와 증거서류 등을 제출해야 한다. 이의신청은 최대 90일 동안 심사·조정이 가능해 연말께야 최종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의신청 없이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으로 갈 수도 있는데 법적 다툼으로 가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임 회장이 결국 '선 사퇴, 후 소송' 식으로 거취를 정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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