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방북에 맞춰 개성공단에 억류됐던 유성진씨(44)를 전격적으로 석방하며 우리 정부에 분명한 유화 메시지를 보냈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줄기찬 대화 요구에 묵묵부답하던 북측이 현 회장 방북과 유씨 석방을 계기로 우리 정부에 신호를 보냈다는 점에서 북한에 넘어간 공이 다시 우리 측에 되돌아온 셈이다. 북한이 유씨를 석방하면서 일종의 저강도 구애 신호를 보냄에 따라 우리 정부의 대응 방안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 회장의 방북에 맞춰 우리 정부가 금강산ㆍ개성관광을 전격적으로 재개하는 빅딜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와 우리 정부로서는 북한의 시그널에 어느 수준의 화답을 해야 할지 고민을 안게 됐다. 당장 북측이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활성화, 식량과 비료 지원 등 인도적 대북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북측은 현 회장 방북에 앞서 물밑접촉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활성화를 위한 방안, 인도적 차원의 식량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동안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은 적절한 시점에 재개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는 점에서 현 회장 귀경 이후 적절한 논의를 거친 뒤 식량ㆍ비료 지원을 본격적으로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 개성공단 활성화 방안의 경우 이미 남북당국 간 실무회담이 세 차례 열린데다 북한도 개성공단 진전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어 현 회장 방북을 계기로 급물살을 탈 공산이 크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개성공단 관련 중대 현안이기도 했던 유씨 문제가 해결된 것은 향후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 공단 사업을 활성화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북측이 주장한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300달러, 토지임대료 5억달러 인상 등 턱없는 요구사항이 어떤 수준에서 조율되느냐에 달려 있다. 반면 금강산ㆍ개성 관광 재개의 경우 여러 변수가 남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 초 외신 인터뷰에서 과거 10년간 북한에 간 돈이 핵무장에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언급한 점을 감안할 때 핵 프로그램에 관한 북측의 분명한 태도 변화 없이 북한의 외화벌이 창구인 금강산ㆍ개성관광 사업지원을 재개할 경우 여론이 악화될 수도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유씨 문제와 연결 지어 대북정책 변화를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남북 관계는 장기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기존 원칙과 연장선상에서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당장은 인도적 대북 지원의 폭을 늘리는 방식으로 북한과의 관계회복 신호를 보내더라도 북측이 개성공단 제한조치를 해제하거나 남북당국 간 대화를 제의하는 등 뚜렷한 태도 변화가 있기 전까지는 신중한 태도를 고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금강산 관광 중단의 원인이었던 고 박왕자씨 피살 사건에 대한 북측의 분명한 유감 표명과 진상규명, 재발 방지 약속이 있기 전까지는 정부 대북정책의 클릭 조정은 미세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인영 서울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는 “북한이 보낸 유화 시그널이 끊어지지 않게 우리 정부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인도적 지원을 하면서도 북측에 요구할 수 있는 원칙적인 부분은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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