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시와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노조는 정년 연장(60세)과 퇴직금 누진제 폐지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며 사측과 1주일간 협상해왔으나 이날 현재까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조 측은 만일 노사 간에 극적 타결이 없으면 18일부터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예고해놓은 상태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현재 노사 교섭 재개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어 파업이 불가피한 것 같다"고 말했다.
파업 여부와 상관없이 노조가 이번에 내걸고 있는 퇴직금 누진제 폐지에 따른 100% 보상과 정년 연장 요구는 파업을 불사해야 할 정도로 명분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서울메트로 직원은 9,042명(임원 제외)이다. 이 가운데 40세 이상 직원은 8,166명으로 90%를 차지하고 있다. 50세 이상 직원은 3,745명으로 절반 수준인 41%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퇴직금 누진제 폐지에 따른 보전율을 100%로 하거나 정년 연장을 하게 되면 이득을 보는 직원은 다수를 차지하는 50세 이상 직원에게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누진제 혜택 대상은 8,126명에 달한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조직 구성원의 평균 연령이 높다 보니 퇴직금 누진제 폐지와 같은 이슈가 파업으로까지 연결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공기업에서는 퇴직금 누진제가 폐지된 지 오래됐지만 40·50대 직원들이 많은 서울메트로는 이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해왔다. 감사원이 지속적으로 폐지를 지적하고 안전행정부는 퇴직금 누진제 미폐지 기관으로 분류해 경영평가에서 벌점을 줘도 그동안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해 들어서야 노사 양측이 누진제 폐지라는 큰 틀의 합의에는 도달했지만 폐지에 따른 손실보전을 어느 정도로 할지를 놓고 노사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노조의 주장대로 누진제 폐지에 따른 보상률 100%를 기준으로 하면 회사 측이 추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3,192억원이나 된다. 이를 50%로 내리면 1,596억원만 들어 회사 측의 부담이 조금 덜어질 수 있다.
서울메트로의 지난 11월 말 현재 누적부채는 3조3,000억원에 달한다. 5% 이자만 따져도 연간 이자비용은 1,650억원. 하루 이자로만 45억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부채비율은 280%나 된다. 서울메트로는 지난해 1,728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매년 평균 2,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보고 있다.
경영상황이 이렇게 열악한데도 노조 측은 퇴직금 누진제 폐지에 따른 손해를 한 푼도 보지 않으려고 100% 보전을 고집하고 있다. 민간기업 같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반기업이 이 같은 경영상황이라면 임금동결은 고사하고 오히려 임금삭감과 대대적인 구조조정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주인 없는 공기업이다 보니 직원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고 보자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인 없는 공기업이라는 생각이 직원들 사이에 만연해 있는 게 문제"라며 "누구 하나 나서서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 이익에만 급급하다 보니 도저히 접점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가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닌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노조가 퇴직금 누진제 폐지 손실을 100%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은 결국은 세금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민들이 피땀 흘려 벌어들인 돈으로 낸 세금을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는 데 지원해달라는 낯 두꺼운 행태와 다름없는 것이다.
또 퇴직금 100% 보전과 정년 연장은 양립할 수 없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하는 것은 결국 조직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40·50대 직원의 이해관계에 휘둘려 전체 조직이 공멸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퇴직금 100% 보전과 정년 연장으로 이익을 보는 것은 40·50대 직원"이라며 "사측에서는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형태의 바터(교환)를 원하고 있지만 노조가 두 가지 모두를 고집하고 있어 협상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조는 어떤 손해도 보지 않고 이익만 챙기려고 하고 있다"며 "주인이 없는 회사다 보니 노조가 극단적인 이기주의 행태를 나타내고 있다"고 비난했다.
노조가 당장 눈앞의 이익만 챙기다 보니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경영혁신을 위해 참신하고 젊은 인재들을 계속 수혈해야 하는데 서울메트로는 신규 채용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 조직이 노쇠화하고 있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개채용은 거의 없었다"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직원들을 채용했지만 아주 작은 규모였다"고 설명했다. 젊은 피의 수혈 없이 조직을 운영하다 보니 조직 노쇠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40·50대 직원이 전체의 90%를 차지할 정도로 항아리 구조로 변했고 이렇다 보니 승진 적체 등의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노조에 따르면 서울메트로의 승진 적체자 비율은 3급이 498명으로 전체의 71%를 차지하고 4급은 1,942명(72.7%), 5급은 2,189명(78.1%), 6급 1,827명(99.6%)에 달한다. 익명의 서울시 관계자는 "조직의 노쇠화가 심각하다 보니 혁신은 생각도 못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더구나 지하철노조가 철도노조 파업에 동조하고 나서면서 비난 여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신의 이익관철을 위해 시민들의 발인 지하철을 볼모로 삼는다는 것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서울메트로 노조가 실제 파업에 돌입하게 되면 구조조정 압박을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조 파업을 계기로 시민들이 본질을 알게 되면 구조조정 압력 여론이 확산될 수 있다"며 "특히 철도노조 파업에 동참하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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