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빚을 탕감해주는 채무재조정 프로그램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정부가 알아서 줄여주더라' '지금 빚을 갚지 않아도 대책이 또 나오겠지' 하는 심리가 만연되면 신용사회의 기반이 무너진다. 국민행복기금이 자칫 무분별한 대출로 수익을 챙겨온 금융기관의 잘못을 덮어주는 '금융기관행복기금'이 될 위험성도 있다. 부실률이 전체의 64%를 차지하는 제2금융권에 대해 금융당국이 무분별한 대출ㆍ영업 규제를 강화하고 공정대출법 제정 등 제도개혁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채무조정 대상자를 지난해 8월 이전부터 연체한 사람으로 제한해 당초 행복기금이 지원하려던 금융채무 불이행자를 320만명에서 43만명 수준으로 줄였다. 또 채무조정 대상도 앞으로 성실히 빚을 갚겠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 경우로 한정한다고 한다. 잘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중도에 빚을 못 갚겠다고 나자빠지면 사실상 속수무책인 게 현실이다. 불이익을 준다고 겁박해도 신용불량자인 이들에게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무조정 신청자에게 본인은 물론 직계존비속의 재산현황을 함께 제출하도록 하는 등 심사ㆍ관리체계를 강화하고 회계법인의 채권가격 평가를 철저히 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최근 새로 발생하는 채무불이행자가 월 4만7,000명에 이르는 만큼 더 이상 정부 차원의 채무탕감 프로그램은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잘못된 기대감은 시장과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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