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기 위해 상대를 이기려고만 했는데, 막상 이기고 나면 더욱 두렵고 불안했어요. 또 다른 승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지요. 남을 이기는 데만 집착했기 때문에 나 자신이 불행했다는 사실은 한참 지나서야 깨달았어요. 그래서 내가 이겨야 하는 상대는 상대 타자나 투수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을 바꿨어요. 그 후 상대가 누구든 게임이 재미있고 행복해지면서 창의력도 저절로 생기더군요. 이런 게 바로 예술(Art) 아닐까요."
한국인 메이저리거 1호, 개인 통산 124승으로 아시아 출신 선수 최다승 기록을 달성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40ㆍ사진)가 화려했던 현역 시절을 보여주는 다양한 컬렉션과 스스로 작가이자 모델로 나선 다양한 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서울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오는 11일부터 11월 17일까지 열리는 'The Hero-우리 모두가 영웅이다' 전은 우리 시대 스포츠 스타의 야구 인생과 조형 예술이 절묘하게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전시다.
입구에서 마주한 작품은 한양대 시절부터 한화 이글스 때까지의 사진조각들을 모아 붙여 만든 당찬 모습을 띤 '박찬호 인물상'으로, 조각가 권오상 작가가 만들었다. '왕과 거지'를 테마로 영웅으로 찬사를 받으면서도 내면에는 항상 두려움을 가졌던 박 선수를 그려낸 유현미 작가의 영상 작품도 눈길을 끈다. '고독' 섹션에서 뮌(Mioon) 작가는 함성, 야유가 공존하는 마운드 위에 선 박 선수의 내적 갈등과 함께 수백명의 관중 역할을 맡은 박찬호를 영상으로 담아냈다. 이현세 작가는 만화를 보면서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는 박 선수를 모델로 단편만화를 선보였다.
박 선수가 직접 만든 영상 작품도 눈길을 끈다. 현재 야구선수인 초등학생 조카를 모델로 자신이 어릴 적 야구 연습을 했던 동네 골목길과 집 담장, 초등학교 운동장 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해 영상 작업을 했다.
박 선수가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하나 둘 수집했던 아이템들도 야구 팬들의 눈길을 사로 잡을 전망이다. 메이저리그 승리구 124개와 유니폼 50여벌, 모자 50여개, 배트 10자루, 헬멧 4개, 야구화 2켤레, 글러브 20여개 등 총 360여점에 달한다. 야구공에 쓴 '지금 던질 공이 무엇인가, 넌 목표지점을 향해 공 하나만 최고로 던진다' 등의 문구가 생생한 감동을 선사한다.
박찬호는 "이기고 지고를 떠나 매 경기에는 선수들의 땀과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는데 그런 소중한 시간과 기억을 함께하기 위한 소장품"이라며 "시간이 지나 후손들도 소장품을 통해 땀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모았다"고 밝혔다.
한편 전시 기간에 맞춰 박찬호와 지인들의 애장품을 모아 파는 '아름다운재단'의 '아름다운 자선 경매 바자회'가 열리며, 그가 관람객과 함께 관람하는 특별 도슨트 투어도 예정돼 있다. 또한 전시 수익금 일부를 '사랑 나눔 프로젝트-베트남 어린이 심장병 수술 돕기' 행사에 기부할 예정인데, 이를 위해 9명의 어린이와 보호자가 입국해 부천 세종병원에서 수술 대기하고 있다. 관람료 성인 1만 2,000원, 초중고생 1만원. (02) 39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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