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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자살이 증가하는 것은 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일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결코 그렇지 않으며 예방활동을 통해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노인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지만 고령화 수준이 심각하다고 해서 모두 노인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OECD 국가의 노인인구 비율을 보면 지난 2010년 기준으로 일본ㆍ이탈리아ㆍ독일ㆍ그리스 순이지만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각각 2.8명, 4.9명에 불과하다. 독일 역시 9.1명으로 OECD 국가 중 하위권의 자살 사망률을 보이고 있으며 일본만이 19.7명으로 다소 높은 편이다. 연령별 자살 사망률을 살펴봐도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에서는 젊은층과 70대 이상 노년층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자살 예방에 성공적이었다고 평가 받는 국가들을 살펴보면 ▦국가의 전문기관이 주도 ▦철저한 원인분석 실시 ▦민ㆍ관ㆍ지역사회 협력 ▦자살 고위험자를 생애주기별(세대별)로 집중관리 ▦자살 예방에 대한 전면적인 홍보ㆍ교육 진행 등을 통해 국민의 인식 변화를 이뤄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살을 막고자 하는 국가의 강력한 의지가 주요 동력이 됐다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다.
핀란드 정부는 1980년대 중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하던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1987년 4월부터 1년간 발생한 자살 사건 중 약 1,400여건의 사례를 조사해 그 실태를 분석한, 이른바 '심리적 부검'을 실시했다는 점이다. 결과물을 토대로 만들어진 구체적 대책과 권고안은 자살 예방에 대한 국가적 공감대를 마련했고 핀란드의 자살률은 프로젝트 이전보다 9% 정도 떨어진 상태로 안정화됐다.
영국 자살 예방정책의 주요 특성은 정부가 자살 예방 목표를 구체적인 수치로 명확히 설정한 다음 보건부ㆍ재무부ㆍ지방정부가 협약을 맺어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살 예방을 국가적 우선순위로 두고 보건소ㆍ약국 등의 기초 건강보호(Primary Care)기관들에 자살을 감시하는 책임을 지우는 등 강력한 대책을 실시했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자살률이 젊은이들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더 높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미국은 1999년 국가 차원의 자살 예방전략을 세우고 정부 산하기관인 자살예방센터를 통해 매년 100억원 가까운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노인들에게 정서적 지지 등을 제공하는 우정의 전화(Friendship Line) 프로그램(샌프란시스코), 고위험군 자살 노인을 확인하기 위해 소방관ㆍ경찰관ㆍ약사ㆍ성직자 등의 일반인을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육성하는 전략(워싱턴 스포케인) 등으로 노인 자살 예방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의원ㆍ보건소 등의 1차 의료기관에서 노인 우울장애를 조기 발견해 치료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 PROSPECT(Prevention of Suicide in Primary Care Elderly)는 노인 자살충동을 기존에 비해 3분의1 수준으로 줄여놓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자살 시도자에 대한 관리 프로그램도 최근 도입됐다. 6개 미국 자살 예방 생명의전화센터가 병원 입원실 혹은 응급실을 퇴원한 자살 시도 환자에게 24시간 이내로 전화 연락을 하고 퇴원 후 수개월간 정기적인 사후 지도 및 연락을 취하는 것이다. LA카운티 정신건강국 자살예방팀의 김재원씨는 "퇴원한 환자가 병원을 스스로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가는 사후 개입 모델인 셈"이라며 "아직 공식 연구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 대상자들의 자살 시도 재발률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1998년 연간 자살자 수가 3만명을 넘어서며 자살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부각됐고 2006년부터는 자살대책기본법을 제정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연간 2,000억원 규모의 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자살 예방대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자살 유가족자에 대한 돌봄이다. 일본 정부는 자살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자살 위험도가 크게 증가한다고 보고 이들을 위한 상담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노인이 노인을 간호ㆍ간병해야 하는 데 따른 피로자살(간병자살), 간병살인 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은 2000년 노인 간병 등을 돕기 위한 개호(간병)보험을 도입해 65세 이후로는 간병비의 10%만 본인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국가가 모두 부담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을 본뜬 장기요양보호제도가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65세 이상 인구의 4.6%만 혜택을 보고 있어 일본(13.2%)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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