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1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넘치는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한다. 이에 따라 막대한 오일머니로 세계 자본시장에 손을 뻗고 있는 중동 국가들의 투자가 다변화되면서 세계 국부펀드들간의 힘겨루기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2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국부펀드 아부다비투자청(ADIA)의 자본규모를 뛰어넘는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ADIA는 현재 9,000억달러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어 이번 사우디의 새 국부펀드는 1조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의 새 국부펀드는 사우디아라비아공공투자기금(SAPIF)이 조성ㆍ운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지역 최대 경제력을 갖춘 사우디가 국부펀드 운용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원유 이외에 국제금융분야에서 제2의 수익원 확보에 나선 중동국가는 물론, 아시아계 펀드들간의 경쟁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사우디의 이번 움직임은 ADIA를 비롯, 그 다음으로 덩치가 큰 싱가포르투자청(GSIC)이 미국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에게 긴급 자금수혈을 해 주는 대신 상당한 지분을 확보한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사우디도 국제 금융시장의 돈 줄이 마르기 시작한 지금 국부펀드의 자금력을 통해 부실에 빠진 영ㆍ미 금융권에 집중 투자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월가 투자은행들의 자금난 해소에는 중국이나 중동 등 아시아계 국부펀드가 구원투수가 되고 있다. 얼마전 ADIA가 가장 먼저 미국 씨티그룹에 75억달러를 지원, 지분 4.9%를 확보해 최대주주로 부상했다. 스위스 최대은행 UBS도 이달 들어 싱가포르투자청(GSIC)와 사우디 왕족 술탄 왕세제로부터 115억달러를 조달했다. 메릴린치 역시 싱가포르 테마섹에 50억달러의 자금요청을 해놓은 상태다. 여기에 중국투자공사(CIC)도 지난 주 모건스탠리에 50억달러를 투입해 회사 지분 9.9%를 취득하는데 합의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사우디의 대규모 국부펀드 조성 계획은 중동과 중국ㆍ싱가폴 등 전세계 국부펀드간의 새로운 경쟁구도를 예고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사우디의 참여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오일머니’의 힘을 다시 한번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조성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 동안 유한자원인 석유 판매에만 의존해온 중동국가들은 자원이 고갈된 이후의 수익원 확보를 위해 금융ㆍ관광 등 새 사업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어 국제 금융시장에서 중동국들의 투자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예상이다. 전문가들은 또 사우디의 이번 국부펀드 조성이 그간 폐쇄적으로 운영돼 왔던 중동국가의 자금흐름에 투명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사우디의 경우 지금까지 벌어들인 오일머니가 주로 중앙은행, 사우디통화기구(SAMA), 왕실 등으로 귀속됐지만 정확히 그 내역이 공개된 바는 없으며, SAPIF도 그간 투자를 국내로만 제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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