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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9월24일] 9월 총파업
입력2005-09-23 18:00:57
수정
2005.09.23 18:00:57
파업의 사전적 의미는 ‘하던 일을 중단한다’이다.
인류역사상 최초의 파업은 기원전 1,500년 무렵 이집트 피라미드 공사장에서 돌을 쪼고 목수 일을 하던 장인들이 벌였다.
공사에 강제 동원된 장인들은 식량배급이 늦어져 가족이 굶주리자 아내들의 지지를 받으며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은 지배 계급의 횡포에 맞선 피지배 계급의 대표적인 저항수단이다. 그러나 요즘은 의사나 조종사 같은 전문가 집단도 파업을 하는 세상이다. ‘조직은 노동자의 힘’이라며 노동자의 단결을 외쳤던 레닌이 무덤에서 머쓱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광복 후 최초, 그리고 한국노동운동사상 최대 규모의 ‘9월 총파업’이 1946년 9월24일 시작됐다.
1946년 5월 미 군정은 조선정판사 위폐사건을 계기로 해방일보 폐간, 공산당 간부 검거 등 조선공산당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조선공산당도 ‘테러는 테러, 피는 피로 갚자’며 폭력에 호소했다.
10월로 예정됐던 전국노동조합 전국평의회 주도 총파업이 갑자기 앞당겨졌다. 미 군정 운수부가 적자 해소, 노동자 관리라는 합리화 명분을 내세워 운수부 종업원 25%를 감원하고 월급제를 일급제로 변경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철도 노동자들은 6개 요구조건과 함께 시한부 파업을 통보했지만 미 군정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9월23일 7,000명의 부산 노동자들의 파업을 시발로 9월24일 전국적인 총파업이 시작됐다. 4만여명이 파업에 참가, 남한의 철도 교통망은 혼란에 빠졌다.
은행, 병원, 미 군정청까지 동정파업이 확대되자 9월30일 경찰 2,000여명과 애국청년단 등이 파업현장을 급습, 1,700여명을 검거했다. 파업은 한 고비를 넘겼지만 10월1일의 대구폭동으로 촉발된 ‘10월 폭동’이 또다시 전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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