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제안한 금융개혁 방안에 이어 글로벌 금융시장의 또 다른 불투명 변수로 떠올랐던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재신임 여부가 사실상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주 상원 인준을 앞둔 버냉키 의장은 그동안 무난히 재신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22일(현지시간) 민주당 소속 바버라 박서(캘리포니아)와 러스 파인골드(위스콘신) 등 상원의원 두 명이 돌연 버냉키 의장에 대한 불신임을 선언하면서 월가를 뒤흔들었다. 당시 약보합을 나타냈던 뉴욕증시는 두 의원의 불신임 선언 직후 급락해 다우지수가 200포인트 이상 하락할 정도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같은 흐름을 다시 전환시킨 것은 오바마 대통령. 다음날인 23일부터 민주당 상원의원들에게 직접 전화해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를 점검하는 등 사전진화에 나섰다. 이 같은 노력을 기울인 후 존 케리(매사추세츠)와 리처드 더빈(일리노이) 등 민주당 의원들과 해리 리드 원내대표는 버냉키 의장에 대한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의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금융위 소속인 저드 그레그 공화당 의원도 공동성명에서 "동료 의원들과 논의한 결과 버냉키 의장이 상원 인준을 받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CNBC는 24일 "자체분석 결과 버냉키 인준안 가결에 필요한 정족수가 확보됐다"면서 "초당적인 지지로 가결되겠지만 찬성 비율은 역대 FRB 의장의 인준표결 가운데 상당히 낮은 수준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냉키 변수는 잦아들 것으로 전망되지만 뉴욕증시가 쉽사리 안정을 찾을지는 단언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오바마의 금융개혁 조치와 중국의 긴축 움직임 등 일련의 정책대응이 지난해 3월 이후 변변한 조정을 거치지 않은 글로벌 증시에 조정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은행의 과도한 위험감수 투자를 억제하기 위한 오바마식 금융개혁 조치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동요하는 것은 글로벌 대형 은행의 수익 및 매출구조를 뿌리째 흔들 수 있다는 우려로 주식 등 위험자산 도피심리가 기승을 부리는 데서 비롯됐다. 은행 시스템의 위험제거(de-risk) 방안이 오히려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아이러니를 연출한 셈이다. 주식투자자의 두려움을 지수화한 변동성지수(VIX)는 지난주 말 27.46으로 치솟으면서 단 3일간 56%나 급등했다. 이 지수가 30를 넘으면 증시조정 국면 돌입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JP모건은 오바마 개혁조치가 현실화할 경우 투자은행의 강점을 가진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2개 은행은 연간 70억달러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골드만삭스는 오바마 행정부가 금지하기로 한 자기매매 매출 비중이 10%에 이르고 있다. 미국계 은행뿐 아니라 바클레이스와 크레디트스위스 등 유럽계 은행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크레디트스위스의 매출 비중은 4.9%, 도이체방크는 4.3%에 이른다. 지난해 3월부터 이어온 글로벌 주가 랠리는 월가 대형 은행의 상승에서 시작됐다. 월가 은행주 상승이 최악의 금융위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계 대형 은행 주가가 오바마 행정부의 규제안 발표 이후 이틀째 폭락조짐을 보이자 미국 증권거래위(SEC)는 주가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금지조치를 일시적으로 부활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23일 전했다. 공매도 금지조치는 지난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붕괴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때 금융주에 한해 일시 도입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의 긴축 악재까지 겹친 시장은 앞으로 몇 주간이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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