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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사람]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

"한국문화 담은 패션브랜드 만들어 글로벌 명품으로 키울것"



외국브랜드 수입 판매 시장 정착은 쉽겠지만 로열티 고스란히 빠져나가

신제품 품평회는 무조건 참석, 품질로 소비자 신뢰 얻어

위기때마다 새 브랜드 출시… 과감한 투자가 성장 비결


"폴로 랄프로렌은 미국의 문화를 대변해주는 대표 아이콘입니다. 세정이 한국의 랄프로렌이 되어 한국의 문화를 담은 패션브랜드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박순호(65·사진) 세정그룹 회장은 지난 2011년 12월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 문화를 담은 패션 브랜드를 탄생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할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세정은 수입 브랜드 비율이 낮기로 유명하다. 제일모직ㆍLG패션 등 패션 대기업들이 수입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세정이 해외 브랜드를 도입하지 않는 이유는 박 회장의 한국 패션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 회장은 "대부분의 패션기업이 초기 국내시장에 쉽게 정착하고 수익안정화를 꾀한다는 이유로 외국의 값비싼 브랜드를 수입해 판매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많은 수익을 내는 만큼 로열티로 수십억원의 비용이 고스란히 빠져나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이어 "요즘은 일본에서 국내 화장품시장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서울 동대문이 아시아 디자인의 메카로 주목받을 만큼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이 월등히 높아졌다"면서 "수입 브랜드를 굳이 들여오지 않아도 될 만큼 한국 패션회사의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패션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자체 브랜드를 육성하지 않는 데 대한 아쉬움을 거듭 드러냈다.

박 회장은 "대기업들이 수입 브랜드 도입보다 자기 브랜드화에 힘을 썼다면 벌써 한국형 글로벌 브랜드가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제는 국내 패션회사들이 경쟁력을 갖춘 브랜드를 개발하고 해외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세정은 직접 개발한 브랜드로만 회사를 운영해왔다"면서 "앞으로도 토종 브랜드를 명품으로 성장시켜 한국이 글로벌 패션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시장을 겨냥해 박 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 오는 2월 출시된다. 트래디셔널 캐주얼(TD) 브랜드인 '헤리토리(Heritory)'다.

박 회장은 "헤리토리는 한국인들의 체형과 문화에 적합한 대표 브랜드"라고 말문을 열었다.

헤리토리로 올해 국내 백화점시장을 집중 공략해 점유율을 높이고 중국과 일본을 공략하면서 단계적으로 해외시장도 노크할 계획이라는 설명이다.

세정이 글로벌 패션시장을 향해 날개를 본격적으로 펼치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박 회장이 뚝심경영으로 국내시장에서 이룬 성과를 보면 해외시장에서도 뭔가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세정은 지난해 매출 1조50억원으로 '1조 클럽'에 가입했다. 대기업 계열회사가 아닌 곳이 패션 매출 1조원을 넘긴 사례는 찾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1조 클럽은 제일모직ㆍLG패션ㆍ코오롱ㆍ이랜드그룹 등 단 4곳뿐이다.

그만큼 세정이 험난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방증이다.

성공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꾸준한 품질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다'는 것이다.

박 회장이 신상품 품평회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이유다. 그의 집무실은 부산 본사에 있지만 서울 대치동 지사에서 진행하는 품평회는 무슨 일보다 우선해 참석한다. 제품 디자인, 원단 등 어느 하나 허투루 지나치는 게 없다는 게 세정 고위관계자의 전언이다.

박 회장은 "시즌마다 몇 날 며칠에 걸쳐 신상품 품평회를 열고 디자인부터 소재, 박음질까지 직접 꼼꼼히 체크해 제품의 질을 검증한다"면서 "40여년간 고객들을 위한 나의 진심이자 사업 성공의 가장 핵심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세정의 또 다른 성장 비결은 과감한 투자에 있다. 박 회장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4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국내외 경제여건이 열악해 대기업들마저 지출을 줄이던 때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다.

세정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며 사세를 확장해나갔다. IMF 당시 출시한 '니(NII)'가 대표적이다. IMF 때 대기업 대부분이 포기한 가두 유통망과 일부 브랜드의 퇴점으로 힘들어하던 백화점을 공략해 3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다.

그야말로 영캐주얼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이다. 박 회장은 "외화내빈 제품은 위기가 오기 전에는 모르지만 위기가 오면 시장에서 사라진다"며 "사업은 어려울 때 펼치는 것이다. 남이 움츠릴 때 오히려 기회가 많이 생긴다"고 말했다.

올해도 과감히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다. 대표 브랜드인 인디안은 지속적으로 라인을 확대하고 매장의 VP(Visual Presentaion)존을 강화하는 등 매장 분위기를 개선할 계획이다.



올리비아 로렌은 폭넓은 가격대와 고품질 상품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유통망을 350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앤클리프 등 할인점 전용 브랜드는 할인점 유통 브랜드 각각의 명확한 콘셉트로 브랜드별 상품을 차별화하고 다양성을 추구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고객을 유치할 예정이다.

센터폴의 경우 내년 하반기에 단독매장을 확장해 매출을 높여갈 방침이다.

박 회장은 "아웃도어시장을 보면 대부분이 익스트림형 클라임 아웃도어웨어가 주류를 이룬다"면서 "실제 아웃도어 소비자들은 산책, 걷기, 단거리 등산 코스 등 트레킹 위주의 고객이 많고 센터폴은 이런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세정은 올해 매출 목표를 전년보다 14%가량 증가한 1조1,500억원으로 잡고 있다. 올해 대내외 경제여건이 어렵다는 전망 속에서도 두자릿수 성장에 자신하고 있는 것이다.

박 회장은 "향후 3년 내에 매출 2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며 "패션사업의 지속적인 신규 브랜드 출시로 그룹 전체의 성장을 이끌어갈 패션사업의 핵심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 성장을 발판 삼아 해외투자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눔이 경영철학…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 됐다"


박순호 회장의 경영철학은 '나눔'이다.

박 회장은 "회사의 외형을 키우기보다는 좋아하는 '패션'에 몰두하고 좋은 것을 주변에 나눠주다 보니 지금의 세정그룹이 됐다"고 말한다. 단순히 돈을 좇기보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며 사업을 하다 보니 덤으로 '성공'까지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평소 나눔활동에 적극적인 그의 모습을 보면 고개가 자연스럽게 끄덕여진다.

박 회장은 사업을 하면서 여러 번 위기를 맞았지만 한 해도 소외계층 돕기를 걸러본 적이 없다.

박 회장은 "나눔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8년 부산1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현재 전국 76명의 회원 중 박 회장이 총 132억원을 기탁해 개인기부자로는 1등이다.

박 회장의 나눔 바이러스는 직원들에게도 퍼져 있다. 세정 임직원들은 급여우수리제도, 자선바자회, 사랑의 집 고쳐주기 등을 통해 3년째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330억원을 출연해 세정나눔재단도 출범시켰다. 몽골에는 매년 6,000만원씩 8년째 교육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좋은 일은 숨겨도 세상에 알려지는 법이다. 박 회장은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제정한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이 상은 기업 부문에서 삼성생명과 세정 단 두 곳만 수상했다.





편직기 4대·미싱 9대로 28세에 '동춘섬유' 창업… '제품에 혼 심는다' 좌우명


■ 박회장은

박순호 회장은 '자수성가'형 창업경영자이다.

박 회장은 어린 시절 가난의 굴레에서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 뒤 '먹고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그런 그를 기쁘게 하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옷'이었다.

박 회장은 "어린 시절 새 옷을 입으면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면서 "그 기분을 모든 사람들이 함께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패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러닝셔츠 도매가게 일이 끝나면 도매상들을 따라 공장에 가서 원사 고르는 방법에서부터 편직, 상품 기획, 디자인, 염색, 재단 등 실무를 익혔다. 적은 월급이지만 차곡차곡 모았다. 이렇게 기반을 다져 지난 1974년 7월, 28세가 되던 해에 부산 중앙시장에 '동춘섬유'라는 간판을 내걸고 132㎡ 규모의 사업장에 편직기 4대와 미싱 9대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동춘섬유는 지금의 세정의 모태가 됐다.

초기 상품을 개발해 도매상에 납품할 때는 도매상 사장이 제품에 문제가 있다며 생트집을 잡아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비용이 더 들지만 옷을 다시 제작해 납품했다.

도매상에 품질로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제품에 혼을 심어야 했다. '나는 나의 혼을 제품에 심는다'는 박 회장의 좌우명도 이때 탄생했다.

박 회장이 처음 만든 옷은 '목폴라' 스타일의 라운드 티셔츠였다. 10년 동안 러닝셔츠 장사를 하면서 소비자들의 기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운 끝에 시제품 400장을 만들었고 거래선을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협상 끝에 서울 남대문시장 '대흥사'와 독점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첫 거래선을 확보하면서 사업이 순항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실적이 좋아짐에 따라 생산시설을 확장하고 브랜드사업에 뛰어들면서 지금의 세정이 있게 만들어준 '인디안' 브랜드를 출시했다.

박 회장은 "내가 사랑하지 않는 제품을 남에게 판매한다면 한두 번은 가능하지만 오래갈 수 없다"면서 "화려한 것은 잠깐 눈을 현혹할 수 있지만 진심, 혼을 담은 것은 영원한 것이다. 진정성이야말로 지루하고 어렵지만 경영인의 최고 덕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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