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A씨는 영업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져 1·2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A씨가 빼돌린 영업비밀이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상당한 경제적 가치가 있어 W사에 경제적 피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W사가 영업비밀이 유출되지 않게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유출된 영업비밀은 W사의 한 직원 컴퓨터에 저장돼 있었는데 이 컴퓨터는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지 않아 누구나 자료를 복사할 수 있었고 영업비밀이 담긴 CD 역시 잠금장치가 안 된 사무실 서랍 안에 방치돼 있었다. W사가 A씨에게 회사기밀 유지각서를 받아놓기는 했으나 대법원은 이는 형식적인 노력에 불과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 판결은 2010년 최종 확정돼 W사는 영업비밀이 유출되고 유출자 처벌에도 실패하는 등 두 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영업비밀이 다른 회사에 넘어가 피해를 입은 기업의 3분의1은 이른바 '비밀관리성' 요건에 발목이 잡혀 손해배상 등의 보상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비밀관리성이란 '평소에 영업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보안을 철저히 해야 영업비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원칙이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허청이 2010~2012년 영업비밀 관련 민사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분석한 결과 영업비밀 유출 피해를 입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274개 기업 가운데 80곳(29.1%)은 영업비밀이 평소에 유출되지 않게 관리를 못했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영업비밀을 빼간 기업을 처벌하기 위한 형사사건에서도 가해 기업 264곳 중 61곳(23.1%)은 비밀관리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더구나 법원은 비밀관리성의 중요성을 갈수록 강조하는 추세다. 2005~2010년 같은 조사에서 민사사건의 경우 비밀관리성 요건이 부정돼 기각된 사례는 전체의 24%였다. 형사사건은 11.2%에 그쳤다. 비밀관리성이 부정된 경우가 24%→29.1%(민사), 11.2%→23.1%(형사)로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도 영업비밀 유출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느냐 마느냐가 비밀관리성에 따라 갈리는 경우가 많다. 서영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은 "영업비밀의 다른 요건인 경제적 유용성이나 비공지성은 웬만하면 인정받지만 비밀관리성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영업비밀 유출 사건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는 사례의 대부분은 비밀관리를 소홀히 한 경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철환 법무법인 율촌 지적재산권팀 변호사는 "다른 회사가 영업비밀을 몰래 빼갔다는 사실만 확실하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기업이 의외로 많다"면서 "비밀관리성이라는 전제가 충족돼야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으므로 △영업비밀보호서약서 작성 △'대외비' '기밀사항' 등 비밀 표시 △영업비밀 관리책임자에게만 접근권한 부여 △관리등급·방화벽·암호 설정 등 관리조치 △보안관리규정 운영 등을 기본적으로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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