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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8월 31일] 美·中 'G2 체제'의 허실

이경태(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하와이 동서센터에서 열린 ‘세계경제위기와 아시아-태평양경제’를 주제로 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미국ㆍ중국ㆍ일본ㆍ동남아에서 경제와 정치안보 분야의 전문가들과 전현직 관리들이 참석해 이틀 동안 진지한 토의를 벌였다. 회의의 화두는 단연 아시아로의 힘의 이동, 특히 중국의 부상이었다. 세계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와중에도 중국은 8%성장이 무난하고 외환보유고는 2조1,000억달러를 넘어 계속 늘고 있으며 얼마 전 열렸던 중미 간 전략과 경제대화를 계기로 실질적인 G2체제가 등장하게 됐다는 등의 찬사들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중국에서 온 참석자는 중국의 재부상은 18세기까지 중국이 누렸던 세계최강국 지위로 복귀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른 강대국들의 대국굴기와는 차별화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에게는 원래 가졌던 밥그릇을 찾아먹는 것이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다. 중국 측 참석자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미중 관계를 우호적이고 협력적으로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전했다. 특히 민주화와 인권문제에서 이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되풀이해 언급했다. 반면 일본에 대한 발언은 거의 없었다. 다만 중국 GDP가 곧 일본을 능가할 것이고 오는 선거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상당기간 정치적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등 부정적 논평을 들으면서 일본이 정말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중국을 제쳐놓고 세계 경제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경제위기의 조기극복, 기후변화ㆍ에너지파동ㆍDDA타결 등이 단적인 예이다. 아직까지도 중국 경제규모는 미국의 3분의1에 그치고 1인당 소득은 10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13억 인구대국의 고성장세가 뿜어내는 세계경제에 대한 충격과 중량감이 중국을 무대의 중앙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세계사의 주역이 바뀌는 장면은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졌다.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했고, 후발산업국인 독일과 일본은 세계전쟁을 일으켰다. 물론 예외는 있다. 팍스브리태니커에서 팍스아메리카나로의 전환은 평화롭게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영국과 미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기본가치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980년대 미국과 일본 간의 무역분쟁은 경제전쟁이라고 불러도 전혀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됐다. 일본의 천문학적인 대미흑자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그 밑바탕에는 일본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있었다. 정부와 기업이 똘똘 뭉쳐서 자신의 지위를 위협한다고 인식한 미국은 일본의 경제체제를 영미식으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 전쟁은 1990년대에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면서 일본이 더 이상 미국에 대한 위협이 아니게 되면서 끝이 났다. 미국과 중국은 가치와 제도에서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가 다 그러하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당분간은 협력하는 모드로 갈 가능성이 크지만 그 바탕은 매우 취약하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언제라도 깨질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중국과 미국이 협력해 세계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매우 바람직하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어느 한편을 들어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은 오지 않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한국외교의 숙제는 광해군과 인조임금 때 명과 청에 대한 외교적 난제와 닮은 꼴이다. 대미외교와 대중외교는 똑같이 중요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안 되고 명분보다는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가 돼야 한다. 이 원칙은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데에도 적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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