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고가 넘치고 있다. 서구식 식습관으로 쌀 소비는 줄고 매년 북한으로 건네지던 쌀도 창고에 쌓여 있다. 풍년을 기뻐할 수만은 없는 우리 농촌의 풍경이다. 그러나 TV홈쇼핑에서 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홈쇼핑 5개사의 쌀 판매량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총 36만포대(1포대 20㎏), 7,000톤을 돌파해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량 3,400여톤을 2배 이상 훌쩍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또한 연말까지 52만3,000포대 판매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여 사상 최초로 1만톤 판매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업체별로는 1월~8월 사이 GS홈쇼핑이 2,900톤, CJ오쇼핑 1,800톤, 현대홈쇼핑 1,000톤, 롯데홈쇼핑 500톤, 농수산홈쇼핑이 1,100톤을 각각 기록했으며 하반기에도 모든 업체가 쌀 또는 쌀 가공식품 판매 계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쌀의 주 판매처인 대형마트의 경우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줄었다고 한다. 넘치는 쌀 재고가 국가적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홈쇼핑이 대안 유통채널로서 쌀 대란의 충격을 줄여주는 완충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유독 홈쇼핑에서 쌀 판매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홈쇼핑은 제품의 부피와 무게를 불문하고 무료배송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무거운 쌀 포대를 카트에 옮겨 싣는 것은 주부들에게 괴로운 일일 수밖에 없기에 전화 한 통화로 무료배송을 해주는 홈쇼핑만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점은 고객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형태의 판매가 아니라 필요를 창출하는 마케팅 방식이라는 점에 있다. 갓 지은 쌀밥에 김치와 햄ㆍ김 등을 얹어 시식하는 홈쇼핑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군침이 돌게 마련이다. 한국인의 머리에 오랜 세월 입력돼 있는 쌀밥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다. 마케팅 이론 중 'V=Q-P'라는 게 있다. 소비자들은 지불하는 가격(Price) 이상의 품질(Quality)을 제공 받을 때 선뜻 지갑을 열고 가치(Value)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품질은 기능상의 품질이 아니라 인식상의 품질이다. 쌀이 제공하는 기능상의 품질에만 머물러서는 길이 없다. 소비자의 입맛을 살려주는 감성적인 마케팅으로 인식상의 품질을 올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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