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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방북이 개인 신분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그의 방북은 사실상 특사 자격과 다름없다는 게 외교가 안팎의 지배적인 분석이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이 대북 특사 성격이 강하다는 관측이 힘을 얻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남북관계 경색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의견이 종종 제기됐고 일부 국회의원의 대북 특사설도 심심치 않게 거론됐다. 하지만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북 특사가 파견된다면 최고 적격자는 현 회장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실제로 현 회장의 이번 방북도 정부의 ‘대북 특사’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현 회장에게 대북 메시지를 건넸다거나 개성공단과 경협 가이드라인을 미리 전해준 것 아니냐는 일각의 관측에 정부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할 경우 정부가 현 회장과 사전에 충분히 의견조율을 이뤘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적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이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는 억류된 우리 근로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각적으로 해왔다”고 말한 것도 현 회장과의 사전 조율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 회장의 특사 자격과 관련해서 대북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현 회장은 현대그룹 총수에 취임한 후 지난 2005년 7월 원산에서 맏딸인 정지이 현대 U&I 전무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처음으로 만났다. 이후 남북 정상회담을 수행하거나 백두산 관광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평양에서 세 차례나 김 위원장과 접촉하며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점은 그의 특사 역할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때문에 현 회장이 이번 방북 과정에서 유씨 석방에 큰 진전을 이뤄낼 경우 앞으로 남북관계 전반에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특사 역할에 더 큰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현 회장이 공식적으로 특사는 아니지만 정부의 메신저 역할을 해 유씨, 연안호,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인도적 지원 등 남북관계 현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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