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마세요, 느끼고 감상하세요.‘ 사과를 그려 보자. 대부분 어려움 없이 사과의 이미지를 그려내지만 그 결과물은 그린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림으로 표현된 사과는 진짜 사과는 아니지만 엄밀한 사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고, 프랑스의 철학자 들뢰즈는 이를 시뮬라크르라고 일컬었다. 청담동 박여숙 화랑에서 이 같은 개념에서 착안 한 기획그룹전 ‘사과따러 가자’를 4~23일 연다. 참여한 9명의 젊은 작가들에게는 ‘음식을 어떻게 미술에 반영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던져졌다. 반(半)극사실주의 작가로 사진과 실물, 유화가 공존한 작품을 제작하는 김준식(28)이 그린 멜론은 멜론 꼭지와 남은 씨들로 표현된다. 음식의 소비와 함께 실체는 사라진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 것. 금속성의 표현이 탁월한 이예진(24)은 반짝이는 금속에 비쳐 변형된 음식 이미지를 아크릴로 그려, 실존에 대한 부정을 시도했다. 이정민(37)은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퍼지 신드롬에 집중했다. ‘두 개의 우울’에서는 폭식과 거식의 중간에서 생성되는 우울함을 햄버거를 소재로 그렸다. 박소연(23)은 달콤한 욕망을 아이스크림으로, 김진욱(28)은 비빔밥을 통해 한국적 색채와 다양한 변형작업을 선보인다. 유용상(35)은 와인잔이 채워지고 흔들리다 비워지는 과정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표현했다. ‘팝콘시리즈’로 유명한 구성연(38)은 음식물에 유리를 꽂은 작품으로 상처받은 도시인을 은유했다. 윤진영(39)은 먹는 묵으로 얼굴형상을 떴는데, 음식과 생명성ㆍ삶과 죽음을 보여준다. 홍정표(32)는 생활 속 오브제로서 도너츠, 물고기 조각들을 수십개씩 만들어냈다. 유망한 이들 작가의 작품가는 최저 180만원부터 시작해 500만~600만원대가 많으며 고가도 1,000만원은 넘지 않는다. (02)549-7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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