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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인을 죽이라"… 1777년 '정유역변' 다뤄

■영화 '역린'은

"작은 일에도 최선을" 중용23장 대사도 화제


금일살주(今日殺主). 1777년 7월28일 밤, '오늘 주인(임금)을 죽이라'는 명을 받은 자객들이 정조의 서고이자 침전인 존현각에 침투한다. 역사 속의 그 사건, 바로 '정유역변'이다. 역모 사실을 알고 있던 정조는 억울하게 뒤주에서 죽은 아비 사도세자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고 칼을 휘두른다. 온화하고 차분하게 분노를 참고 있던 용(임금). 그 용의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역린·왕의 분노를 의미)을 건드리며 살주에 나선 이들. 영화 역린은 그날 하루 궁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그려냈다.

살아야 하는 정조(현빈), 정조를 지켜야 하는 상책(내시) 갑수(정재영), 정조를 죽여야 하는 조선판 킬러 을수(조정석). 이들은 저마다의 목적으로 칼을 손에 쥐지만 목적은 같다. '수단이 아닌 의지로 살아가는 인간이 되고 싶다.'

정조는 노론의 위협 속에 한동안 도구적 삶을 살아가다 개혁군주로서 뜻을 펼치게 되고 갑수 역시 누군가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내시가 됐다가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을수 역시 '사랑하는 여인과 평범한 삶을 살겠다'는 삶의 목적이 생기며 정조를 죽여야 하는 인물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이들은 수단이 아닌 의지로 살겠다는 목적,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이타적인 끈으로 묶여 있어요.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으로 정조는 본인이 원하던 '의지대로 사는 삶'을 살게 되죠. 군왕 정조가 아닌 인간 정조를 이야기함에 있어 갑수와 을수는 꼭 필요한 존재였어요."



이재규 감독이 역린의 이야기를 펼치며 모티브로 삼았던 작품은 영국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었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갈등관계에 있는 다수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사연을 함께 끌고 가는 구조다. "한명의 화자가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가져가면서 강렬한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 이런 느낌을 역린을 통해 보여주려 했습니다." 화제이자 논란의 중심이던 역린의 멀티캐스팅 의도는 여기에 있었다.

영화 개봉 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대사는 단연 '중용 23장'이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래야 세상이 변한다'는 내용이다. '작은 일'에 소홀해 터진 대형사고 앞에서 영화 속 정조가 읊조리는 중용 23장은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감독도 영화를 만드는 동안 이 글귀에 의지해 물리적으로나 심적으로 밀려오는 압박을 떨치려 했다. 배우 현빈 역시 개봉 후 연일 이어진 무대인사로 피곤할 때 중용의 글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하니 영화 속 대사가 이 감독과 배우에게는 작은 변화를 불러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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