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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광복 70주년과 과학기술인의 사명

일제강점기 과학기술 불모지서 눈부신 발전 거듭 고도성장 견인

국가·국민을 위한 국책연구기관

미래 먹거리 개발·신산업 창출 등 한국號 도약 발판 확보 기여해야


이병권 원장


곧 8·15 광복 70주년이다. 과학기술의 시각에서 본 일제 강점과 광복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1905년 러일 전쟁 막바지, 쓰시마 해전에서 6척의 일본 함대는 38척이나 되는 러시아 제2 태평양함대와 포격전을 벌여 완승을 거뒀다. 러시아는 당시 최첨단 함선으로 무장한 일본 해군의 함포 능력에 무너졌다. 이후 우리는 암울했던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겪어야 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을 앞당긴 히로시마 원자폭탄도 우라늄-235를 동위원소인 우라늄-238과 분리·농축해 에너지화한 과학의 산물이다.

1945년 광복 당시 우리의 과학기술은 어떠했나. 일제 강점기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기관들은 대부분 일본 중앙기관의 분소 형태로 있었다. 규모가 열악했을 뿐 아니라 운영의 독립성도 갖추지 못했다. 일제 치하에서는 핵심 연구나 경영활동에 한국인이 참여할 수 없도록 철저히 배제됐다. 우리가 독자적 역량을 갖출 수가 없었다.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 이공학부를 비롯해 이공계 대학 졸업자가 70여명에 불과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당시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은 그야말로 백지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런 불모지에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은 한국의 고도성장을 견인했다. 최근 광복 70주년 기념 대표 성과 70선이 발표됐다. 참치잡이에 사용된 참치 연승어구 기술부터 통일벼, D램 반도체, 최근의 나로호에 이르기까지 대표 성과 70선에는 대한민국 발전에 과학기술이 어떻게 기여했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이 가운데 영광스럽게도 필자가 젊은 시절 참여한 불소화합물 제조공정 개발도 포함돼 있다. 1990년 유학을 끝내고 막 귀국했을 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프레온 가스(CFC)를 대체할 물질을 개발하라는 국가적 임무가 주어졌다. 당시 대부분의 수출 산업에 사용되던 CFC가 오존층 파괴의 주범으로 꼽히면서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가 제정됐다. 이를 계기로 CFC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만일 기술 개발이 미뤄질 경우 수출이 제한돼 우리나라 경제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불가피했다.



정부는 이에 산업계의 어려움 해결에 적극 나섰다. KIST는 CFC대체물질기술센터를 세워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30여명의 연구자가 3년간 밤을 지새웠다.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에어컨용 냉매를 대체한 HFC-132a의 개발이 완료됐을 때 젊은 선임연구원으로 국가가 명한 임무를 완수하는 데 일조했다는 보람에 감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과학기술인들이 조국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 연구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당연히 국가와 국민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우리 주력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대학의 연구 역량이 신장된 오늘날 국책 연구기관에 요구되는 임무가 과거 CFC 대체물질 개발 때와는 다를 수도 있다.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미래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다시 한 번 성장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국책연구기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디지털컴퓨팅의 한계를 극복하는 양자 컴퓨팅 기술이나 미래 인공지능의 핵심인 나노모사 신경회로망 기술과 같이 거대한 신산업을 만드는 미지 영역의 개척이 예가 될 수 있다. 대양을 누비는 우리 원양어업 발전의 기초가 된 1950년대 참치 연승어구 기술처럼 대한민국호가 미래의 바다를 힘차게 항해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이 다시 한 번 나서야 한다.

광복 70주년이 다가오는 이때 "과학에는 조국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고 최형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초대 KIST 원장)의 회고록 글귀가 떠오른다.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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