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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89)는 한국의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여성화가다. 그는 주로 일상의 체험과 내면의 갈등, 꿈과 환상의 세계를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붓으로 표현했다. 채색화의 대가답게 화려한 색채를 잘 구사하고 화면 구성도 독특해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과 이국적인 감흥에 젖게 한다. 천경자는 특히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릴 만큼 꽃이나 여인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청혼'에도 멋들어진 양장으로 한껏 치장하고 꽃다발을 안은 여인이 등장한다. 작가를 많이 닮은 그림의 여인은 내면의 고독과 슬픔을 가슴 깊이 묻어둔 채 아름다운 꽃과 화려한 치장으로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뉘앙스로부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작가의 인생 여로와 정한(情恨)이 살며시 떠오른다. 그래서 청혼이라는 제목이 주는 행복감에도 불구하고 그림에서는 아스라한 슬픔의 감정이 느껴진다. /글=이주헌 서울미술관장, 사진제공=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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