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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사는 아이 엄마 김모(34)씨는 인터넷 카페 '대구맘'과 '중고나라'를 자주 찾는다. 김씨는 이곳에서 10만원짜리 보행기를 3만원에, 4만원짜리 걸음마 보조기는 1만원에 각각 구입했다. 김씨는 "불황의 영향으로 갈수록 생활이 팍팍해지고 있어 비싼 유아용품을 사서 쓰기는 너무 부담스럽다"며 "중고 사이트에서 좋은 제품을 싸게 사는 것은 알뜰 주부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생필품을 비롯한 물가까지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갈수록 어려워지자 중고 제품 거래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고 거래시장의 오랜 인기 품목은 뭐니뭐니해도 생활용품이다. 11일 대형 중고거래 카페 중고나라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올라온 침대나 화장대ㆍ소파ㆍ테이블 등 생활용품 판매 글만 3,000개가 넘었다.
세탁기나 냉장고ㆍ텔레비전ㆍ컴퓨터 등 가전제품부터 침대나 책상ㆍ밥상 등의 가구까지 이곳만 잘 둘러보면 모든 세간살이를 한번에 끝낼 수 있을 정도다.
아이 물건만큼은 웬만하면 새것으로 산다는 엄마들도 요즘에는 중고시장으로 몰린다.
특히 아이의 지능 발달을 도울 고가의 전집 서적은 중고시장의 최고 인기 품목이다. 보통 40만원짜리 전집이 10만원선에 거래되기 때문에 깨끗한 제품은 올라오기 무섭게 팔린다. 아이가 자라면서 필요가 없어진 기저귀도 단골 제품. 박스당 인터넷 최저가보다 5,000원 이상 싸게 팔리다 보니 아예 기저귀 구입을 이곳에서만 한다는 엄마들까지 나온다.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비싸게 사주고 나면 금세 흥미를 잃어 방구석에 처박히는 장난감도 중고로 이용하기 좋은 제품이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다섯살배기 엄마 김모(36)씨는 "요즘에는 아이 장난감을 구에서 운영하는 영유아플라자에서 개당 2,000~5,000원에 가져다 쓴다"며 "저렴한 비용으로 여러 제품을 쓸 수 있으니 아이도 좋아하고 경제적으로도 부담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교복 물려 입기도 더 이상 부끄러운 게 아닌 불황을 이겨내는 합리적 소비로 여겨진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주부 차모(44)씨는 개학을 앞둔 올 2월 구청 로비에서 열린 교복 물려주기 행사장에서 아들의 교복을 한 벌에 3,000원을 주고 구입했다. 차씨는 "아이가 중3이 되니 입학할 때 입은 교복을 더 이상 못 입게 됐다"며 "1년 입자고 교복을 사려니 아까웠는데 마침 괜찮은 중고 교복을 구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대학가도 예외가 아니다. 새 학기를 맞은 대학가에는 중고 전공교재를 구하려는 학생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대학교 전문서적 중고거래 사이트 북장터(www.campustalk.co.kr)에는 하루 동안에도 3,500~4,000명이 방문해 교재를 찾고 있으며 각 대학의 인터넷 게시판도 '***교수님의 *** 교재 삽니다/팝니다'와 같은 글들로 가득하다.
이 같은 현상을 감안해 새 책을 산 뒤 학기를 마치고 더 높은 값을 받고 팔기 위해 일부러 교재에 필기를 하지 않는 눈물겨운 모습까지 등장한다.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필기 하나도 없어요. 연습장에 풀었어요'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능력시험 기출문제집 판매 글이 올라와 있다. 이 책의 정가는 한 권에 3만3,000원. 책이 매우 깨끗한 A급 매물은 2만원 후반의 높은 가격에서 거래되다 보니 자기 책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주인 같지 않은 주인'들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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