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에 대한 낙관론을 굽히지 않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결국 경기부양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고 주택가격 하락과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미국 경제가 침체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는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부시 대통령은 4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장, 월트 루켄 상품선물거래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금융시장 실무그룹회의를 열었다. 평소 재무장관이 주재하던 이 회의를 부시 대통령이 주재하는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경기진작책은 무슨 내용을 담나=부시 정부의 경기부양 대책과 관련, 전문가들은 폴슨 재무장관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1년 전부터 광범위하게 검토해온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세금감면과 추가적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책이 골격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폴슨 장관은 지난 1년 동안 국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현행 최고 35%인 법인세를 인하하는 작업을 추진해왔고 이 작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인세 인하는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에 일관되게 반대해온 민주당의 반발로 실현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소비둔화의 주범인 주택가격 하락과 주택차압 증가를 막기 위한 추가적인 주택시장 안정대책도 거론되고 있다. 앞서 지난 2일 에드 길레스피 백악관 경제자문관은 “주택시장 등의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할 일이 좀더 있다고 본다”며 “경기진작을 위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백악관 주변에서는 국책 모기지회사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모기지 채권 인수한도를 ‘점보론’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하고 있다. 점보론은 신용이 높은 주택소비자에게 42만7,000달러 이상을 빌려주는 고액 주택담보대출로 민간 모기지 회사가 보유한 점포론을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인수할 경우 모기지 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늘리는 효과가 발생한다. 또 연방주택청(FHA)의 대출프로그램을 개선, 서민들의 대출보증을 확대하는 방안과 지난해 말 발표한 변동금리부모기지(ARM)의 이자율 동결 범위의 확대와 기간 연장 등도 검토되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민주당이 요구해온 전략비축유 방출은 고려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고유가로 상황이 어려워지겠지만 비상 시국은 아니다”라며 비축유를 방출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경기부양 카드를 꺼낸 이유는=미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단단하다고 고집하면서 FRB의 금리인하에만 목을 매다가는 임기 말 레임덕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도 경기부양책으로 선회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부시 행정부의 경기부양은 집권 7년 동안 벌써 두번째다. 2001년 경기침체 때 소득세 감면과 환불조치로 소비를 부양한 데 이어 이번에 또다시 주택담보대출자를 구제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이후 부시 행정부는 이렇다 할 경기진작책을 내세운 것이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여파와 국제유가 고공행진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게 한다. 미국의 경기부양 착수는 미국 경제 향방을 지켜보는 세계 경제에는 긍정적 영향을 주겠지만 부시 행정부가 임기 말로 치닫고 대선 레이스가 본격 개막한 정국 상황과 야당인 민주당의 의회장악 등으로 인해 어떤 대책이건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3일 “부시 대통령은 경기를 진작하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며 “오는 28일로 예정된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 때까지는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구체적인 대책 발표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경제 상황이 심각해지자 부시 대통령은 연초부터 ‘경제 챙기기’ 행보에 들어갔다. 부시 대통령은 7일 시카고에서 재계 지도자들과 만나 경제계의 의견을 청취하며 같은 날 폴슨 재무장관은 뉴욕에서 금융시장 현황에 대한 연설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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