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셀제도(베트남명 호앙사·중국명 시사제도)의 석유시추 문제를 놓고 충돌한 중국과 베트남 간 분쟁이 중국과 아세안의 지역갈등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지역에서 고조되는 긴장감에 대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집단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가운데 중국은 개별 국가와의 분쟁이 아세안으로 비화하는 것을 경계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아세안 외무장관들은 미얀마 아세안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남중국해에서 충돌하고 있는 당사국이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국제법 원칙에 따라 자제하고 평화적 수단으로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세안 외무장관들은 중국과 베트남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이번 성명은 최근 파라셀제도 인근 석유시추 현장에서 중국 선박들과 베트남 초계함이 충돌하며 남중국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외무장관들은 성명에서 상호신뢰 환경을 조성하도록 당사국들에 남중국해당사국행동선언(DOC)의 완전한 이행을 당부했다.
남중국해에서의 양국 간 갈등은 7일 파라셀제도 인근에서 석유시추를 강행하는 중국 선박을 저지하기 위해 출동한 베트남 연안경비대 초계함을 중국 측이 들이받고 물대포로 공격하면서 급격히 고조됐다. 중국은 인근 해역에 함정 3척을 포함해 80척의 선박을 파견한 데 이어 항공기와 헬리콥터를 이용해 베트남 초계함의 진입 자체를 막고 있다. 이에 대해 베트남 연안경비대는 중국이 또다시 선체충돌 등을 기도할 경우 같은 방법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혀 양측의 물리적 충돌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영유권 분쟁해역에서의 충돌 소식으로 베트남에서는 반중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11일 베트남 수도 하노이 도심의 중국대사관 주변에는 베트남 시민 500여명이 모여 중국의 분쟁도서 시추작업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다.
스프래틀리(중국명 난사제도)를 사이에 둔 중국과 필리핀 간의 갈등수위도 높아졌다. 필리핀은 앞서 6일 스프래틀리 인근 바다에서 불법조업을 한 중국 선박을 압류한 데 이어 어민 11명을 전원 구치소에 수감했다. 중국 측은 남중국해의 주권을 주장하며 어민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과 필리핀 등 영유권 분쟁 당사국은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를 아세안과 중국 간의 문제로 확대시킬 방침이다.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정상회의 참석 전 성명을 통해 "역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안을 푸는 데 필리핀과 중국 간의 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영유권 갈등이 아세안 국가들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논평에서 "남중국해 문제는 중국과 아세안 간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중국은 개별국가가 남중국해 문제를 이용해 중국과 아세안 간의 우호·협력이라는 대세를 파괴하는 것을 일관되게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화 대변인은 이어 "중국은 아세안과 함께 남중국해당사국행동선언의 틀에서 이 선언을 전면적이고 지속적으로 이행함으로써 지역평화와 안정을 공동으로 수호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화 대변인의 이 같은 말은 해상 실크로드 등으로 아세안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유권 분쟁을 베트남과 필리핀에 한정시키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중국 외교부는 또 아세안의 이러한 움직임 뒤에는 베트남과 필리핀을 부추겨 위험한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남중국해 영유권에는 미국을 포함한 어떤 나라도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못박았다.
앞서 9일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중국 선박의 위험한 행위와 협박이 우려된다"며 경계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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