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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만 나옵니다. 눈은 떴지만 글을 읽을 수 없는 장님으로 살아왔습니다. 선생님이 평생 까막눈으로 살 뻔한 저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편지를 읽는 50ㆍ60대 제자들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30대 스승의 눈시울도 금세 붉어진다. 14일 평생교육기관인 서울 마포구 양원주부학교의 중학교 1학년 1반 교실. 한자 수업이 진행되던 중 학생들이 '스승의 날'을 맞아 작은 감사의 시간을 마련했다. 학생 대표로 감사편지를 낭독한 조병연(56) 학생은 감정에 복받친 목소리로 "세월의 나이테가 부모 같은 제자들을 이끄느라 힘이 들 터인데도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했다. 편지를 읽는 동안 서로 울지 않기로 약속을 했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못 배워 서러웠던 기억'과 '늦깎이 학생의 손을 잡아준 스승에 대한 감사함'이 떠올라 나이든 학생들의 눈가는 이미 젖어 있다. 75세로 올해 고등검정고시 최고령 합격자인 조월화 학생은 "수업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아 힘들었지만 배우고 공부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면서 "답답할 텐데도 자상하게 잘 이끌어준 선생님들 덕분에 '못 배웠다'는 평생의 한을 푼 것 같다. 이제 대입검정고시에 도전해 또 다른 꿈을 꾸고 싶다"며 웃어 보였다. 이들의 담임인 최한나(35) 교사도 "어머님들 존경합니다.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라고 다정한 말을 건네며 학생들에게 '공부는 재미있게 하고, 학교는 즐겁게 다니며, 인생은 행복하게 산다'는 의미가 담긴 '사랑의 보약 3첩'을 전달했다. 25세의 어린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양원주부학교로 와 벌써 10년 동안 3,000명에 가까운 나이 많은 제자들을 가르쳐왔다는 최 교사. 그는 "비록 시기가 늦었지만 시간을 쪼개 가정일과 회사일, 학업까지 챙기는 학생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이 학교 이선재 교장은 "글을 읽을 줄도 몰랐던 사람들이 우리 학교를 나와 교수나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80세 유치원 선생님이 되기도 했고, 시인으로 등단도 했다"며 "이들이 만일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겠나. 아직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부족한 재정 때문에 사비를 털어 유인물을 만들고 복사해 나눠주는 스승들. 그리고 도시락을 싸와 끼니를 해결하는 스승을 위해 '촌지' 대신 '집에서 손수 만든 반찬'을 건네는 제자들. 스승의 날을 맞은 양원주부학교의 선생님과 학생들의 얼굴에는 희망의 웃음이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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