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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흙 속에서 희망 찾자
입력2005-09-15 15:30:05
수정
2005.09.15 15:30:05
전성군 <농협중앙교육원 교수>
추석에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걱정거리 아니면 고향의 추억 이야기일 게다. 만일 추억 이야기라면 이번 기회에 내 고향 흙 소리를 들어보자.
어릴 적 고향 마을에 하얀 눈이 내리면 동구 밖에 뛰쳐나가 눈사람을 만들었다. 동생보다 눈사람을 크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눈을 뭉치고 굴리다 보면 하얀 눈 아래 묻혀 있는 검정 흙이 묻어나와 눈사람을 망쳐놓고는 했다.
생각해보면 사실 흙은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고 겨울과 함께 찾아온 눈이 흙이라는 본질을 덮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겨울 눈을 좋아할 뿐 덮어버린 흙은 외면해버린다. 사실 세상에 존재하는 흙이 진실이라면 그것을 덮어버린 고정관념ㆍ편견ㆍ오해 등이 눈일 것인데 보기에 좋은 하얀 눈에만 관심을 둔다. 그런 의미에서 흙의 참모습을 파헤쳐보자.
흙은 생명의 근원이고 우리 삶의 터전이며 우리 농업의 바탕이다. 흙은 생명체로서 한줌의 흙 속에는 수천, 수억의 토양 미생물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리고 흙을 바탕으로 식물도 자라고 사람도 살아간다. 어쩌면 사람과 흙은 서로 나눠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이루는 인토불이(人土不二)다. 때문에 흙이 병들면 사람도 병약해진다. 병든 흙은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키고 그 흙에서 난 농산물은 우리의 몸을 해치게 된다.
그뿐만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흙이 베풀어주는 은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흙은 ‘생명의 어머니’다. 따라서 흙이 생명체로서 살아 있어야만 모든 만물이 비로소 소생을 하고 인간에게 밝고 쾌적한 미래를 보장해준다.
절대로 상대를 기만하지 않는 진실한 흙, 두 쪽의 씨앗을 뿌리면 가을에 열 배, 백 배로 보답하는 흙, 사람의 발에 짓밟히지만 동시에 자신을 짓밟는 사람을 떠받쳐주는 흙. 흙은 이토록 진실하고 겸손하며 모든 사람에게 양식을 제공하고 생명을 유지시켜준다.
또한 흙 속에 뿌리박은 민들레에서부터 이름 모를 나무에 이르기까지 진정 고향은 흙 속일 게다. 흙이 몸이 되고 물이 핏줄이 되는 자연의 일원으로 이 이름 모를 초목들도 사람과 함께 살아온 것이다.
앞으로 흙을 살리고 지키는 일은 현대인에게 부과된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하지만 지금 현대인의 삶에서는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이미 젊은이들은 농촌과 농업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렸다. 농업인들도 희망을 잃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흙 속에서 희망을 찾자. 흙은 움트는 새싹 앞에서 갓난아기를 키우는 어미다.
흙은 말라 비틀어지거나 벌레 먹은 줄기와 잎과 열매 앞에서 애가 찾는 어미다. 흙은 잎새가 비록 무성해도 가뭄과 장마가 아니어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어미다. 흙은 잘 익은 열매를 거두고도 근심 많은 어미다. 이래도 보기 좋은 하얀 눈에만 관심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매사 짓밟았던 흙을 재차 짓밟을 것인가. 한번쯤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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