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정보국은 2011년 5월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은신처에 숨어 있던 빈라덴을 사살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문건 400여건을 20일(현지시간) 공개했다. '빈라덴의 책장(Bin Laden's bookshelf)'으로 불리는 이 문건에는 알카에다 조직원들과의 교신 내용, 가족에게 보낸 편지, 책 등이 포함돼 있다.
빈라덴은 특히 미국을 공격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아프리카 지하디스트 전사들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설립을 중단하고 대신 서아프리카 남쪽 시에라리온과 토고의 미국대사관과 정유회사 등을 공격할 것을 주문했다. 알카에다 지도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미국인을 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자신했던 정황도 나왔다. 빈라덴은 미국인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알카에다와 싸우겠다는 것은 헛된 노력일 뿐"이라며 "이로 인해 달러가치가 하락하고 군인의 자살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리더는 비관적이고 군인들은 자살을 시도하는데 어떻게 (미국인들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이 서한은 2009~2011년에 작성된 것으로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다가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그는 음모이론에도 빠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가진 총 38권의 영어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음모이론과 관련된 책으로 미국 정부가 9·11테러를 공모했다는 주장을 담은 '새로운 진주만, 부시 행정부와 9ㆍ11에 관한 혼란스러운 질문들'이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비밀결사조직인 프리메이슨에 관한 책, 워터게이트 사건 특종 기자인 밥 우드워드가 쓴 '오바마의 전쟁들', 노엄 촘스키의 저서, 미 9·11위원회 보고서 등이 발견됐다.
테러로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잔인한 인물이었지만 가족에게는 맹목적인 사랑을 베푸는 이중적인 모습도 확인됐다. 4명의 부인과 20명의 자녀를 둔 그는 아들 결혼과 관련해 신부의 어머니와 수 차례 편지를 교환하는 자상함도 보였다. 이란에서 가택 연금됐다가 풀려 나온 부인 카이리야와 아들 함자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당신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며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