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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디테일한 정책 타기팅


20여년 전 미국 유학 때의 일이다. 비용편익 분석 기말 과제로 다인승 차로제의 효과성에 대한 연구를 선택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제도인 다인승 차로제가 시골 도시에서도 시행되고 있어 연구해보기로 했다. 교통 혼잡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을 때 다인승 차로제를 시행해야 효과가 있는지를 알아보자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자료 수집차 도서관에 들렀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쩌면 작다고 할 만한 주제에 대한 연구인데 관련 서적이 서가 몇 개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통공학ㆍ경제학ㆍ환경공학 등 온갖 관점에서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연구가 돼 있었다. 이때의 가벼운 충격은 지금까지의 삶에 교훈이 됐다.

아직도 우리는 서양에 비해 디테일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다. 연구 주제를 정할 때에도 범위를 크게 잡는다. 주제를 크게 논하지 않으면 사람이 그릇이 작다고 느낀다. 잘못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숫자 오류 등을 지적하면 소심한 동료, 상사로 치부되기 일쑤다. 반면 서양은 산업화와 근대 학문의 역사가 길어서 그런지 작고 세밀한 부분부터 접근한다.

큰일을 잘 못하는 사람도 작은 일은 때론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소하고 작은 일은 못하거나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큰 일을 분명히 하지 못한다. 소소하고 평범한 분야에서까지 완벽하기가 사실 훨씬 더 어렵다.

우리 사회가 발전ㆍ분화해나가면서 세상 모든 것이 점점 더 복잡해졌다. 예전에는 문제도 안 되던 것들이 지금은 문제가 되고 사람들 취향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졌다. 무척 소소한 것에 분노하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한다. 정책 수요자의 욕구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흔히들 중소기업을 9988이라고 한다. 사업체 수의 99%, 고용의 88%를 점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들 중소기업을 한 덩어리로 보고 정책을 그리면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312만 사업체 중 50인 이상의 중기업이 12만, 50인 미만 소기업이 300만이고 이 중에서 275만은 10인 미만의 소상공인이다. 여기에 제조업, 도소매업, 기타 서비스업 등 업종도 천차만별이다. 시장 환경과 자금ㆍ기술ㆍ인력ㆍ판로 등 4대 애로 문제까지 감안하면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를 한 솥에다 넣고 끓이면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안 되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제 정책도 수요자와 정책목적에 따라 맞춤형으로 바뀌어야 한다. 단지 일반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정책으로 채택되지 못한다면 중소기업 문제 해결의 길은 요원하다. 디테일한 정책 타기팅은 그런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양궁에서 황소의 눈, 과녁의 카메라를 뚫는 것과 같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타기팅만이 중소기업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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