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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네덜란드는 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심화되면서 경기가 침체되고 실업률이 치솟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네덜란드 노사정은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인상 자제, 시간제 고용 활성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신노선협약'을 체결했다. 1982년 경제위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바세나르협약 정신으로 돌아가 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네덜란드 정부는 시간제 근로자에게 전일제 근로자와 같이 사회보장과 노동법을 적용하고 시간제 근로자와 전일제 근로자 사이의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비례보호정책을 도입했다. 신노선협약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993년 협약 이후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고용률은 급속도로 높아졌다. 1994년 63.9%에 머물렀던 네덜란드 고용률은 이듬해 65.1%로 상승한 데 이어 1999년에는 70.8%를 기록했다. 협약체결 6년 만에 70%의 벽을 넘어선 것이다.
우리나라도 네덜란드의 사례를 교훈 삼아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의욕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시간 선택제 일자리다. 정부는 근로조건 등에서 전일제와 차별이 없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93만개를 만들어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참여를 확대시킨다는 복안이다.
목표 달성 급급해 서두르면 역효과
그런데 우리가 네덜란드 등 북유럽 사례를 참고할 때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민간 부문에서 만들어내는 시간제 일자리가 공공 부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2010년 네덜란드의 민간 부문 시간제 일자리는 247만3,000개로 정부에서 만들어낸 규모(47만8,000개)의 5배가 넘었다. 결국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률 높이기의 관건은 민간 부문에 달려 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정부 지원에 힘입어 CJ제일제당과 IBK기업은행, 효성ITX 등 민간 기업들이 시간제 일자리 만들기에 나서는 등 긍정적인 조짐도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노동시장 상황을 보면 시간제 일자리가 제대로 될지 걱정이 되는 점이 많다. 지난 정부 때 시작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업은 지원조건 면에서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와 비슷한데 2010년 제도 도입 이후 3년 동안 신청 규모가 고작 1,700명에 그쳤다. 정부가 앞으로 5년 동안 93만개의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제도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우리 노동시장의 여건이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노동시장 구조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 국내 노동시장은 정규직 시장과 비정규직 시장으로 이원화돼 있고 시간제 일자리는 대부분 저부가 산업 위주로 구성돼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괜찮은 시간제 일자리가 쉽사리 확산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려는 여성과 점진적으로 퇴직을 원하는 베이비부머들을 위한 새로운 직무 형태 개발이 덜된 점도 기업들이 시간제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요인이다. 여기에다 전일제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안돼 있다는 점도 제도 정착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직장 여성들이 육아 등을 이유로 시간제로 전환을 하고 싶어도 회사에 얼굴이 덜 보이면 일을 안 한다는 인식이 강한 분위기 속에서는 쉽지 않다.
노동시장 유연화 등 여건조성 더 급해
이런 점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자리를 잡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를 무시하고 당장 임기 내에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서두르다가는 부작용만 야기할 수도 있다. 과거 파견ㆍ용역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자 질 낮은 시간제 일자리가 대거 생겨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당장 시간제 일자리 몇 개 만드는 것보다는 제도가 정착될 수 있는 여건부터 조성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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