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사는 증권사 직원 방승기(가명ㆍ37) 씨 입에서는 요즘 출퇴근 시간만 되면 절로 휘파람이 나온다. 한달 전 출퇴근 수단으로 승용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선택하면서부터다. 안양천 자전거도로를 타고 회사가 있는 여의도까지 넉넉잡아 30분이면 OK. 지긋지긋한 교통체증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돼 하루의 시작이 즐거울 뿐 아니라, 평소 쉽게 피곤해지던 다리에도 조금씩 힘이 붙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방 씨의 즐거움은 이 뿐만이 아니다. 저녁에는 7살짜리 아들, 아내와 함께 안양천 시민공원에 나온다. 최근 안양천으로 바로 연결되는 구름다리가 생겨 걸어서 5분이면 공원에 닿을 수 있다. 아들은 공원에 널찍하게 마련된 전용 인라인 스케이트장에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방 씨와 아내는 배드민턴을 치며 땀을 흘린다. 오랜 세월동안 악취를 풍기거나 볼품없이 메마른 채 버려져 있던 하천들이 청계천 복원을 기점 삼아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웰빙’을 얼마나 잘 구현할 수 있느냐가 집 선택의 큰 기준으로 떠오르는 추세에 맞춰 강ㆍ산ㆍ공원 조망 프리미엄 뿐 아니라 ‘하천 프리미엄’도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분위기다. 하천 복원ㆍ녹지화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양재천의 경우 물길을 따라 늘어선 타워팰리스 1~3차, 개포우성, 대치 미도ㆍ선경 등이 하나같이 고가주택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여러 집값 상승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지만 양재천 프리미엄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지역 주민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이미 복원ㆍ정비가 이뤄진 성내천ㆍ중랑천 인근지역도 양재천 만큼은 아니지만 집값 오름세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서울에는 한강, 안양ㆍ중랑천 등 3개 국가하천과 청계ㆍ양재천 등 33개의 지방하천이 있다. 길이로 따지면 230km가 넘는다. 이 중 무려 24개나 되는 크고 작은 하천이 일부 혹은 전부가 복개된 ‘죽은 하천’이지만 하나 둘 흉물스런 콘크리트를 벗어 던지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서울시는 녹번ㆍ도림ㆍ도봉ㆍ봉원ㆍ불광ㆍ우이천 등 6곳을 복원해 녹지로 조성하겠다며 최근 복원작업에 착수했다. 서울시 푸른도시국 관계자는 “현재 성북ㆍ정릉ㆍ홍제천 등의 복개하천 상부 건축물을 철거하고 있고 도림ㆍ우이ㆍ도봉천 등은 복원설계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한정된 예산으로 한꺼번에 모든 하천을 복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투자심사 등을 거쳐 우선순위를 정한다”고 말했다. 각 자치구 역시 관내 하천복원이 지역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며 당현천ㆍ반포천과 같은 하천을 생태공원화하는 경쟁을 펼치고 있다. 구로구의 한 관계자는 “2008년 준공을 목표로 설계를 진행 중인 도림천 복원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며 “최근 시범적으로 3개소에 징검다리를 놓고 자연석 쌓기 등을 해봤더니 호응이 대단히 뜨거웠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 곳곳에서 하천 복원ㆍ정비 계획이 경쟁적으로 발표되면서 주민들의 마음도 한껏 들뜨는 모습이다. 한편에서는 하천 복원이라는 호재를 내세워 아파트 호가를 무리하게 끌어올리는 부작용(?)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구로구 신도림동 H공인 관계자는 “도림천의 경우 워낙 건천이어서 청계천처럼 물을 인위적으로 끌어써야 하는데다 도로로 쓰이는 복개구간을 뜯으려면 예산이 만만치 않게 들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쉬워 보이지 않는데도 일부 주민들은 기대감에 가득차 터무니없는 호가를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경 스피드뱅크 팀장은 “청계천의 경우 일부 단지를 제외하고는 많은 프리미엄을 누리지는 못했다”면서도 “하천 정비는 웰빙 트렌드와 딱 들어맞는 만큼 당장 프리미엄을 노리기보다는 쾌적한 주거환경을 원하는 수요자들에게 호재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