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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산책] 휴가계획
입력2005-07-01 16:41:35
수정
2005.07.01 16:41:35
제갈정웅<대림대학 이사장>
삶의 질을 이야기할 때 일과 휴식이라는 두 단어는 꼭 짝짓기가 이뤄진다.
일이 없으면 휴식이 의미가 없고 휴식도 일이 없다면 크게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과 휴식의 원형은 아마 성경의 창세기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창세기에 의하면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말씀으로 엿세 동안에 전우주와 인간, 동ㆍ식물까지 창조하시고 일곱번째 되는 날에는 안식하셨다고 돼 있다.
오늘날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삶의 패턴은 종교와 상관없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삶의 형태였다. 그러다가 요즘 와서는 닷새 일하고 이틀 쉬는 형태로 삶의 패턴이 바뀌고 있다. 그만큼 휴식의 소중함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삶의 패턴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하루이틀의 휴식이 아니라 휴가라는 이름으로 날짜가 길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선진국일수록 휴가 일수가 많아지고 휴가 일수가 곧 높은 삶의 질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휴가 일수가 길어지면서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인가를 사전에 세심하게 계획을 세우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휴가 계획이라는 단어가 친숙한 단어가 된 것이다.
지난 80년대 초반에 쿠웨이트 건설현장에서 근무할 때 만난 영국의 엔지니어는 올인형 휴가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그가 필자에게 왜 이 무더운 곳에 근무하러 왔느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오일달러 벌려고 왔다고 하기에는 조금 자존심이 상해서 회사의 일 때문에 왔다고 했더니 자기는 스킨스쿠버가 취미인데 홍해 속의 산호를 구경하려고 쿠웨이트 근무를 지원했다고 했다. 그는 바다 속 경치의 아름다움, 특히 산호초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지치지 않고 설명했고 홍해 속의 산호초를 구경할 꿈으로 쿠웨이트의 더위쯤은 쉽게 견딜 수 있는 듯 했다. 그 당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일하는 장소를 선택하는 선진국 젊은이가 몹시 부러웠다.
11개월 일하고 1개월 휴가 기간 동안에 완전히 홍해 동쪽에서 홍해 서쪽을 횡단할 계획이라고 했다. 동쪽에서 배를 빌려 한달 후에 서쪽에서 반납하고 돌아와서 또 열심히 일해 호주 바다 속을 보러 갈 예정이라고 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휴가를 즐기기 위한 것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삶은 아직도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그때 만난 영국 기술자와 같은 휴가 계획을 세우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지만 우리도 이제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고 휴가문화도 달라지는 것 같다.
시원하게 잠들 수 있는 곳이 우리를 유혹하는 계절이다. 요즈음처럼 열대야가 계속되는 때는 흰 모래와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시원한 바닷가나 아니면 한낮에도 긴팔을 입어야 하는 고지대 숲 속이 그리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휴가와 피서를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휴가 뒤에는 ‘간다’ 또는 ‘다녀왔다’ 같은 동사가 붙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들의 잠재의식 속에 휴가라는 것이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을 벗어나서 다른 장소로의 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휴가가 이제 우리들에게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개발연대에는 휴가를 금전과 교환하기도 했으나 언제부터인가 각 조직들도 휴가를 본래 목적대로 재충전을 위해서 쓰도록 권장하고 금전적 보상을 안해주고 있다. 또 조직원들도 눈치 보며 휴가와 돈을 교환하려 하지 않고 당당히 휴가를 택하게 됐다.
농업사회에서는 가을의 추수가 끝나면 봄이 올 때까지 긴 휴식 기간이 있어서 자연히 일과 휴식이 조화를 이뤘으나 산업사회가 성숙되면서 일년 내내 생산이 계속되기 때문에 특별히 휴가라는 것이 필요하게 됐다. 농업사회에서는 휴식의 의미는 ‘휴(休)’자가 의미하는 것처럼 사람이 일터 근처 나무에 기대어 쉬는 것이었는데 요즘 쉬는 것은 일터를 떠나고 현재 살고 있는 곳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이 어느 틈엔가 일을 위해 휴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휴식을 위해 일을 하는 경우가 생겼고 휴가를 일에 우선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됐다. 몇년 전에 일본의 유명한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자기는 일년 계획을 세울 때 휴가 계획을 제일 우선적으로 세우고 그 후에 강연이나 저술 등의 할 일을 계획한다고 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영국의 엔지니어나 오마에 겐이치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제는 연초에 올해 어디를 갈지 가족들과 의논해 휴가 계획을 세우거나 아예 앞으로 10년간의 휴가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실천하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보게 된다.
경제적인 여유와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나이가 많아지면 장거리 여행이 힘들어지니 젊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부터 여행하고 나이 들어 장시간 비행기 타는 것이 힘들어질 때 이웃의 일본이나 중국을 여행한다며 멀리 남미나 아프리카 등을 다녀오기도 한다.
이렇게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휴가 동안에 여행만 할 것이 아니라 영혼에도 비타민을 공급하는 독서를 곁들이면 더욱 삶이 풍요로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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