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는 우려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국인 PIIGS 가운데 포르투갈ㆍ아일랜드ㆍ그리스ㆍ스페인이 모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마지막으로 남은 이탈리아 역시 구제금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이탈리아의 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글로벌 투자가들 사이에 '다음(구제금융 신청국)은 이탈리아'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씨티그룹은 "이탈리아가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및 유럽안정화기구(ESM),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영국의 통화펀드 매니저인 닉 호카트는 "다음은 이탈리아일 가능성이 높으며 구제금융 규모도 스페인보다 더 많은 2,000억~3,000억유로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제금융의 그림자가 이탈리아로 옮겨간 이유는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부채 급증, 경기침체 등을 우려한 해외 투자가들이 발길을 끊으면서 국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경제 규모에 비해 정부 부채 비율이 높은 나라다.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120%로 구제금융을 이미 신청한 포르투갈(107%), 아일랜드(105%), 스페인(68%)보다 훨씬 높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있으며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국채 수익률은 지난 8일 5.772%까지 상승했다.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의 6.216%보다는 낮지만 독일의 1.329%보다는 무려 444bp(1bp=0.01%P)나 높다. 앞서 그리스ㆍ아일랜드ㆍ포르투갈ㆍ스페인 모두 해당국 국채와 독일 10년물 국채와의 스프레드가 500bp 이상으로 벌어진 뒤 한 달여 만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만큼 이탈리아도 조만간 외부 수혈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도 이 같은 이유를 들어 구제금융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탈리아 유력지 코리에레델라세라의 페데리코 푸비니 칼럼니스트는 10일 "이제 이탈리아가 유로 위기국 가운데 유일하게 구제를 신청하지 않은 나라"라면서 "이탈리아의 차입 부담이 낮춰지지 않으면 스페인처럼 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자국 은행이 사들이는 모습도 스페인과 닮은 꼴이다. 가뜩이나 차입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이탈리아 은행이 계속 국채를 매입할 경우 부실을 더욱 키울 수도 있다. 이탈리아는 당장 이달 도래하는 국채 만기 규모만 245억유로에 달하며 올해 말까지 매달 평균 323억유로를 갚아야 한다.
당장 13일로 예정된 이탈리아 국채 발행 입찰이 구제금융 여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날 65억유로 규모의 국채 방행을, 다음날에는 변동금리 채권 및 제로쿠폰 채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10일 "이탈리아 등 유럽 은행은 고질적인 차입금융에 중독돼 연명하고 있다"면서 "수개월 내에 이탈리아 은행도 스페인과 같은 구제금융을 신청할 처지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지난달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이탈리아의 양대 은행인 유니크레디트와 인테사상파올로를 비롯한 26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점을 상기시켰다.
이와 함께 마리오 몬티 총리의 대대적인 개혁과 긴축 노선, 증세 등에 대한 국민 저항이 거센 점도 이탈리아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긴축 정책에 힘입어 지난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3.9%로 낮췄으며 실업률 역시 24%에 달하는 스페인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경기침체로 국민의 삶은 팍팍해진 상태다.
한편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들이 스페인 구제금융을 결정함에 따라 이탈리아를 지원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경고도 나왔다. 브뤼셀 소재 유럽정책연구센터(CEPS)의 대니얼 그로스 소장은 "스페인을 구제하면 이탈리아를 도울 여력이 없게 되며 상황이 악화되면 (이탈리아가) 스스로 구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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