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돈 안 드는 전세는 집주인 담보대출 방식(유형Ⅰ)과 전세보증금 반환청구권 양도 방식(유형Ⅱ) 등 두 가지가 있다. 유형에 상관없이 집주인의 적극적인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대출 상품이라는 것이 가장 큰 맹점이다.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상황에서 어떤 집주인이 세입자용 대출을 일으키고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양도할까 싶다.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은 진작부터 제기됐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대선공약 이행 차원에서 렌트푸어 구제 대책이라고 기어코 만들어냈다. 전세대출 상품의 선택권을 넓혀줬다고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실효성이 없는데도 목돈 안 드는 제도라고 생색을 내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대통령 공약이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탁상행정이 결합한 탓이다. 전세계약 구조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런 엉터리 정책 처방이 나올 턱이 없다. 어디 이뿐이랴. 앞서 관치로 만든 신재형저축도 딱 이런 꼴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정책이라고 해도 현실에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신재형저축이나 목돈 안 드는 전세대출은 현실성이 결여된 정책을 졸속 추진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은행은 은행대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했다. 무엇보다 정책신뢰도 추락을 자초한 점을 정부는 반성하고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서민금융정책이 이 정도라면 이름도 거창한 창조금융은 무슨 방도로 해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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