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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연암 두 실학자의 삶

■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펴냄


물(水)의 사주를 타고났다는 연암 박지원, 그리고 불(火)에 해당하는 다산 정약용. 그래서였을까. 25년의 나이 차를 감안해도, 조선 정조 시절 서울 사대문 안에 살았던 두 실학자는 서로 교류한 흔적이 거의 없다. 꼭 10년 전 연암의 '열하일기'를 재조명한 저술로 주목받았던 저자는 이 책에서 연암과 다산을 한 권의 책 안으로 끌어들였다.

무심한 이들에겐 그저 같은 실학의 대가로만 기억되겠지만, 저자는 이들의 차이에 더 눈길이 갔다. 무엇보다 인생 역정이 달랐다. 연암은 명문가이자 집권세력인 노론 가문에서 태어나 굴곡 없는 삶을 살았고, 과거 공부와는 거리를 둬 정치적 격변에 휘말리는 일도 없었다. 반면 재야세력인 남인 집안에서 태어난 다산은 학문을 갈고 닦아 마침내 정조의 총애를 받는 관리로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왕의 죽음과 함께 가문은 물론 당파 전체가 몰락했다. 또 형제와 지인들이 천주교 관련 대역죄인으로 참형을 면하지 못했고, 본인도 18년간 유배생활을 겪어야 했다.

특히 저자는 18세기 조선 지성사의 가장 큰 사건인 문체반정과 서학(천주교)에 대한 두 사람의 사유와 태도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드러낸다.

정조는 당시 선비들의 패관문학에 빠져 기운이 해이해졌다며, 문체가 그릇되면 인재를 기를 수 없고 곧 국가가 위태로워진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다산은 경학공부를 강조하고, 학교와 시험, 제도를 총동원해 문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목민심서'에서 드러난 다산의 계몽적 목소리, 그리고 고전경학을 분류ㆍ해석하는 학문적 기질, 목민관으로서 백성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수령관 등이 잘 드러난다. 반면 연암은 옛 글과 요즘 글의 구분이 무슨 소용이 있냐며, 오히려 진부함을 가장 참을 수 없어 했다.



서학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달랐다. 다산은 정조에게 솔직히 자신이 서학에 빠졌었음을 고백하면서도, 이는 유가와 묵가 혹은 불가 사상과의 관계 정도라고 강조한다. 종교라고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유학과 대립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변명이다. 서학과 인연이 닿지 않았던 연암은 '요사스런 패설'이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뉘우치는 신도들에 대해서는 관대해야 한다고 말해 또 다른 입장을 드러냈다.

저자는 2년 간격으로 이 책에 이은 두 권의 연작을 계획하고 있다. 이 책에서 두 실학자의 삶과 사상을 엿보았다면, 2편에서는 두 사람을 둘러싼 인물들을 더 들여다볼 예정이다. 또 3편에서는 동아시아를 넘어 전세계 지성사의 거장들과 함께 살펴본다.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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