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SectionName(); [오늘의 경제소사/4월2일] 트리폴리 협약 권홍우 편집위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1971년 4월2일 트리폴리. 리비아와 서방 석유회사들이 6주 동안의 실랑이 끝에 석유협정을 맺었다. 골자는 원유 가격 35. 3% 인상. 리비아 정부는 처음부터 강경하게 나갔다. 배럴당 2달러55센트인 원유 공급가격을 3달러75센트로 올리자고 주장해 3달러10달러선을 제시한 23개 석유회사 대표단을 긴장시켰다. 줄다리기 협상의 결과는 3달러45센트. 협약타결 소식에 소비국들은 아연실색했다. 리비아산 원유의 품질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페르시아만 6개 산유국과 석유회사들이 6주 전에 테헤란에서 합의한 배럴당 2달러14센트(19.5% 인상)보다 값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리비아는 테헤란 협약에 끼지 않고 끝까지 버틴 덕분에 보다 유리한 가격구조를 얻어냈다. 연간 6억1,000만달러의 추가 수입을 올리게 된 리비아가 환호작약했음은 당연지사. 석유 메이저들을 어떠했을까. 겉으로는 울상을 지었지만 속으로 웃었다. 소규모 석유회사들이 산유국과 개별계약을 맺는 통로를 봉쇄한데다 유가 인상분도 판매 가격에 포함시키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다. 가격인상폭이 예상보다 훨씬 컸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리비아는 당초 원유가 인상분의 소비국 전가를 금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슬그머니 빼버렸다. 전가금지 조항을 거둔 대가가 바로 유가 대폭 인상이다. 결국 원유가 인상에 따른 추가 부담은 소비국이 모두 떠안았다. 고유가에 따른 물가상승에 허덕이게 된 소비국들에는 2년6개월 뒤 더 큰 파도가 덮쳤다. 4차 중동전쟁 직후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자원 무기화로 1차 석유파동이 발생한 것. 비슷한 시기에 테헤란과 트리폴리에서 잇따라 맺은 원유 가격 협약은 가격 결정권이 국제 메이저에서 산유국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이자 자원민족주의 등장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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