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이 상당기간 침체를 보이면서 금융권을 중심으로 "인구구조나 자산배분구조상 이제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은 끝났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인지 여유자산을 부동산보다는 금융투자 쪽으로 돌려야 한다는 충고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농업기반경제가 제조업으로 전환되면서 대체로 1인당 국민소득 2,000~2만달러에서 도시화가 활발히 진행됐고 이 기간 중 쌓인 가계소득은 대부분 부동산에 저장되는 현상을 보여 왔다. 그러나 소득 2만달러가 넘어서면 인구정체와 더불어 제조업이 서비스산업으로 대체되고 신규 인프라와 도시개발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부동산시장의 변동폭은 점차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이후 추가되는 소득은 대부분 금융자산으로 저장되면서 가계자산 중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커진다.
우리나라도 장차 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에 가까워질수록 현재 가계자산 중 70%를 넘는 부동산자산의 비중이 낮아지고 금융자산의 비중이 점차 높아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선진국의 금융자산 비율이 높은 것은 가계가 부동산을 팔고 금융자산으로 갈아타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고 2만달러 이후 추가되는 소득 중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이 금융자산으로 저장됐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요즘 우리처럼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한정된 가계재원을 금융투자로 더 많이 돌리기 위해 부동산을 빨리 처분해서 금융자산으로 갈아타라고 하는 충고는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부동산 매각촉진은 가뜩이나 어려운 부동산시장을 더욱 침체로 몰아갈 수 있고 이로 인한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을 수 있는 산업이 바로 금융산업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지난 20년간 부동산버블 붕괴로 부동산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는 동안 닛케이 주가지수는 5분의1토막까지 줄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을 '블랙스완 딜레마'로 표현한 월가의 케네스 포스너는 "요즘처럼 잦은 경제위기의 시대에는 금융자산을 보유하는 것이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보유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출이 점차 어려워지고 내수침체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중산층의 소비가능재원이 즉시연금 등 장기금융상품에 묶이고 부동산마저 지속적으로 침체된다면 대폭적인 재정지출 확대 외에는 달리 경기를 활성화시킬 묘안을 찾기 힘들다. 어려운 때일수록 남을 누르고 더 많이 차지하려고 하기보다는 서로 격려하고 나눠 가지려는 지혜가 아쉽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