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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치매 할머니들의 '동남아 여행'
입력2007-08-01 17:22:17
수정
2007.08.01 17:22:17
[목요일 아침에] 치매 할머니들의 '동남아 여행'
이현우 hulee@sed.co.kr
서울 지하철2호선 교대역 14번 출구를 나와 처음 만나는 골목을 따라 200m쯤 가면 서초성심치매보호센터가 나온다. 서초구청이 천주교 까리따스수녀회에 위탁해 운영되는 이곳에서는 30여명의 치매 할머니들이 수녀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절반가량인 15명은 아예 이곳에서 상주한다. 그 할머니들에게 최근 경사가 생겼다. 매달 두번씩의 해외여행(?)이다. 할머니들은 비행기 대신 휠체어를 탄다. 여행지는 서울교대까지의 왕복코스. 센터장인 최금순 제라르도 수녀는 이를 '동남아여행'이라고 부른다.
일손 부족해 불가능했던 나들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치매센터에서 교대 교정을 한바퀴 돌고 오는 데 20분도 안 걸린다. 오가는 길에 특별한 구경거리도 없다. 그러나 몸도 정신도 모두 온전치 않은 할머니들에게는 1시간 반 이상 걸리는 먼 여정이다. 또 하루 종일 실내에서 지내는 노인들에게는 모처럼 세상구경을 하고 바깥공기를 마시는 즐거운 시간이다. 보통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가능해 나들이 축에도 끼지 못하는 길이지만 치매 노인들에게는 가기 힘든, 그러나 즐거운 코스다. 그러니 해외여행만큼이나 가치 있는 외출이라는 설명이다.
이 나들이는 치매센터의 숙원사업이었지만 얼마 전까지도 불가능했던 일이다. 노인들은 이곳에서 전문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물리치료, 음악ㆍ미술ㆍ원예치료, 수지침, 노래교실을 비롯한 각종 레크리에이션 등의 좋은 서비스를 받는다. 그런데 이게 모두 실내활동이다. 실외활동의 필요성이 절실했고 그래서 오래 전부터 운동 겸 기분전환을 위한 바깥구경 프로그램을 꿈꿔왔다. 하지만 마음뿐이었다.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건강이 정상이 아닌 할머니들의 바깥출입에는 휠체어, 용변처리 문제 등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할 게 많다. 거동이 불편하니 곁에서 일일이 돌봐줘야 한다. 평일에는 도로의 차량통행이 많아 휴일에 움직이거나 야외로 나가야 한다. 그만큼 보살핌의 손이 많이 필요하다. 보통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지만 치매센터 할머니들에게는 나들이가 거의 '프로젝트'급에 속하는 일인 것이다.
그러다 두 달 전부터 도곡동 성당의 신자 10여명이 매달 2ㆍ4번째 주일에 자원봉사를 하면서 할머니들의 여행이 시작됐다. 이들 봉사자가 내는 시간은 3시간 정도다. "보통사람에게는 결코 길지도 않고 별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일 수도 있으나 치매 할머니들과 우리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엄청나게 귀중한 시간이지요.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어르신들이지만 나들이하는 날이라고 말해주면 안색이 환해지며 그렇게 기뻐할 수 없어요".
제라르도 수녀의 이야기는 시간과 봉사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동안 부모님과 앞선 세대의 어른들에게 너무 무관심하고 소홀히 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그들의 피땀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지금처럼 살 수 있겠는가. 할머니들의 좁아진 어깨와 굽은 허리, 주름진 얼굴, 오락가락하는 기억은 그들이 가진 것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쏟아준 결과가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는 나 혼자 컸고 내가 잘 나서 모든 것을 이룬 것으로 착각한다. 교만이며 배은망덕이다.
봉사와 나눔의 삶 멀리 있지 않아
봉사와 희생ㆍ나눔의 삶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있는 곳에서 반경 5㎞ 안을 둘러보라. 소년소녀 가장, 독거노인, 미혼모 출산 아이, 노숙자 급식소 등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시설들이 즐비하다. 작은 기부와 약간의 시간만 내면 그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치매센터 어른들의 외출이 더 자주 이뤄지고 그들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까지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또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랑을 실천하다 참변을 당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의 명복을, 그리고 나머지 봉사자들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빈다.
입력시간 : 2007/08/0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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