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동들을 위한 체육관 등 특수시설은 바라지도 않아요. 중고등부 교육과정을 설치하고 학생들이 몸담을 수 있는 교실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권정미(42) 연세재활학교 학부모회 회장은 9일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애끓는 부모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1급 지체장애아동인 13세의 자녀를 두고 있는 권씨는 이달 안으로 중고등부 설치를 위한 학칙 개정이 성사되지 않으면 학교를 떠나야 할 판이다. 자체 교사(校舍)가 없어서 세브란스병원 재활병동 3층에 세 들어 있는 연세재활학교는 40여년의 전통을 가진 특수학교지만 현재 유치원과 초등학교 과정만 개설돼 있어 중고등부 과정 설치가 숙원사업이 돼왔다. 지난해 12월18일부터 20여일 넘게 연세대학교 본관 총장실 앞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권씨는 대학 측의 터무니없는 '배짱 경영'을 생각하면 지금도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다. 수년 전부터 학부모들이 교육청 등을 찾아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중고등부 개설을 위한 재활학교 신축자금 37억원을 따오자 대학 측은 학교 건립 부지를 같이 내놓으라고 교육청에 요구한 것이다. 캠퍼스 내 2,400여평의 국공유 부지를 포함하고 있는 연세대는 학교 지을 땅 수백평을 무상으로 주든지, 아니면 임대료 6억원을 면제해 주든지 해달라고 요구하다 교육청으로부터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옛말 그대로다. 교육청은 '사립학교에 돈 주고 땅 주면 그게 국립이지 사립이냐'며 대학 측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태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학교를 새로 지어도 교사 월급 등 학교 운영비는 전부 국가에서 지원할 뿐 대학 측은 별다른 부담이 생기지 않는다. 대승적 차원에서 대학이 조금만 양보하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는 것이 학부모 측의 주장이다. 최근 대학 측이 캠퍼스 서쪽 900여평의 학군단 부지에 올 4월 공사에 착공하겠다는 서류를 교육청에 제출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수년여의 실랑이 끝에 불신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어 또 어떻게 대학 측이 입장을 바꿀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당장 이달 중순 재단 이사회에서 재활학교 내 중고등부 설치를 위한 학칙개정만 해주면 올해 졸업할 9명의 장애아동들이 학교를 떠나지 않아도 되지만 대학 측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단적이 예다. 권 회장은 "서울시 교육청은 중고등부 개설을 위한 학칙 개정만 하면 올 1년간 소요예산을 전액 지원해주기로 했다"며 "대학 측이 이러저런 이유를 대가며 애를 태우고 있지만 오는 2월5일 재활학교 졸업식까지는 학칙개정을 완결해주기를 바란다"고 희망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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