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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인 이슈] 왕치산 中 국무원 부총리

中 경제위기 진화나선 '특급 소방수'<br>사스사태 진압등 통해 '돌파력 강한 지도자'로 각인<br>"물가억제속 고성장 이어갈것" 경기부양 방침 내세워<br>반독점위원회 주임 맡아 '규제 강화' 여부에도 관심

●왕치산 부총리 약력
▲1948년 산둥성 칭다오 출생
▲1969년 산시성 옌안 인민공사 근무
▲1976년 시안 소재 시베이(西北) 역사학과 졸업
▲1988년 중국농업신탁투자공사 사장
▲1993년 중국인민은행 부행장
▲1994년 중국인민건설은행 행장
▲2002년 하이난성 당서기
▲2003년 베이징시 시장
▲2007년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2008년 중국 국무원 부총리

"요즘 중국경제는 밖으로 국제금융의 불확실성이 증대하고, 안으로는 심각한 자연재해가 잇따라 발생해 어려움이 큽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자신이 있습니다. 어떠한 시련과 도전도 이겨낼 충분한 능력이 있어요. 중국은 물가불안을 잠재우고 지속적인 고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베이징올림픽 개막 전날인 지난 8월 7일 왕치산(60ㆍ王岐山)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칭화(淸華)대학의 경제학자들을 중국 지도자들의 집단거주지인 중난하이(中南海)로 초청해 현재 중국경제가 당면한 도전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경제난국에 대한 강력한 돌파의지를 드러냈다. '특급 소방수', '해결사' 등의 별명을 갖고 있는 왕 부총리 다운 자신감이었다. 그는 이어 경제학자들에게 "하반기 중국 경제정책운용이 긴축 위주의 '양방(兩防)'에서 성장을 유지하고 물가를 억제하는 '일보일공(一保一控)'으로 바뀌고 있다"며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 방침을 분명히 했다. 중국경제가 베이징올림픽을 전후로 ▲증시 폭락 ▲성장률 둔화 ▲수출 부진 ▲물가 불안 등의 위기요인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고비를 맞고 있는 가운데, 왕치산 부총리가 중국경제의 난국을 헤쳐나갈 해결사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 경제계에서는 경제적 위기를 성공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소방수는 왕 부총리 밖에 없다"는 인물평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인들이 왕치산에게 강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그가 이미 수 차례에 걸쳐 해결사로서의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가 이 별명이 얻은 것은 지난 2003년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중국을 강타했을 때. 당시 하이난성(海南省) 당서기였던 왕치산은 베이징 시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취임 일성으로 공무원들에게 "1은 1이고, 2는 2다. 사태를 절대 축소하거나 은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하라"고 강조했다. 이후 환자 숫자는 매일 투명하게 공개됐고, 순식간에 실추됐던 중국 정부의 신뢰도 회복돼 사스 사태는 성공적으로 진압됐다. 그 덕에 왕치산은 돌파력이 강한 지도자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왕치산은 앞서 1998년 중국경제를 뒤흔든'광둥국제신탁투자공사(GITIC)'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 때도 특급 소방수로 이름을 날렸다. 광둥성 부성장으로 재직할 당시 그는 GITIC를 과감하게 파산처리하면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 이 과정을 지켜 본 주변에서는 왕치산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당시 골드만삭스 회장이던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왕치산은 시장과 사람을 이해하는 진정한 전문가"라고 평했고, '중국의 시대'를 쓴 로렌스 브람은 "잠재적 금융 위기에 대처하는 데 왕치산보다 나은 인물이 없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왕치산이 올해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무원 부총리에 선임돼 '중국경제의 해결사' 임무를 맡게 됐다. 그리고 그는 지난 6월 중순 미국에서 열린 제4차 미중전략경제대화에서 특유의 돌파력과 유머감각을 앞세워 위안화 절상과 무역불균형 해소와 같은 미중간 통상현안을 원만하게 처리함으로써 첫 데뷔무대에서 해결사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요즘 중국 국무원에는 왕 부총리를 수장으로 한 금융대책반이 꾸려졌다. 왕치산이 중국 증시의 침체와 중소 수출둔화에 따른 성장률 둔화를 극복하기 위한 특급소방수로 투입된 것이다. 왕치산은 지난달 3~5일 산둥(山東)성 방문을 시작으로 중국 경제정책의 물길을 돌려놓기 시작했다. 그는 현지 은행 관계자들과 좌담회에서 "현지은행 관계자들에게 "긴축정책도 중요하지만 국민경제의 건전한 고속성장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확대를 지시했다. 또한 "금융리스크의 방지는 영원한 과제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안정적인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구사해 나갈 것"이라면서 증시부양 의지를 내비쳤다. 중국의 한 경제전문가는 "왕치산의 이 같은 발언들은 앞으로 중국 금융정책의 흐름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중국 정부가 투자자의 신뢰회복을 위해 조용하면서도 지속적인 시장관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왕치산에게도 고난의 시절은 있었다. 1948년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칭화대학 교수 집안에서 태어난 왕 부총리는 문화혁명 당시 온 가족이 우파로 몰려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으로 쫓겨나 인민공사에서 일하게 됐다. 이후 시베이(西北)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산시성박물관에서 역사학자의 길을 걷던 왕치산은 76년 마오쩌둥(毛澤東) 사망 후 장인인 야오이린 전 부총리의 후광에 힘입어 82년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과 국무원 농촌연구발전중심에서 근무하게 됐고, 1988년부터는 농업신탁투자공사 총경리를 시작으로 10년간 금융계와 인연을 맺었다. 국무원 부총리로서 국내 경제난국 타개를 어깨에 짊어진 왕치산에게 최근 또 하나의 중책이 맡겨졌다. 지난 8월 1일 시행된 '반독점법'의 집행기구인 반독점위원회의 주임에 오른 것. 중국시장의 공정경쟁을 확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반독점법이지만 휘두르기에 따라서는 자국기업을 보호하고 외자기업을 억누르는 '규제의 칼날'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반독점위원회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매우 높다. 왕 부총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를 통해 미ㆍ중간 에너지협력을 강조하면서 "양국의 협력은 중국의 에너지와 환경보호에도 도움이 되지만, 미국의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상업적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이익을 주는 기업과 나라에게는 더 큰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특급소방수 왕치산은 지금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강속구 위주의 투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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