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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미술관(관장 김영걸)이 기획한 올해 첫 전시의 제목은 '노 코멘트(No Comment)'.
"설명하지 않을 테니 관객 스스로 그 의미를 찾아가라"는 의도를 담고 있다.
전시장의 시작 지점, 스케치북에 검은 잉크로 그린 유승호의 작품 25장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하트에서 시작된 형태는 전구의 필라멘트로, 스프링으로 다양하게 바뀌어간다. 글과 그림이 뒤섞인 이것은 문자나 형태의 논리성에서 벗어나 사고의 분열과정,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좇은 것이다. 작품 중간에 "정신차리고 다시 써보자. 삼천포로 빠지지 말고"라고 적은 작가의 다짐도 보인다.
맞은 편은 전형적 서양 주택을 촬영한 이정후의 사진들이다. 겉으로는 따뜻해 보이지만 견고하게 닫힌 문 앞에서 이방인이었던 작가는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대신 관객은 '그 집 앞'에서 스스로 주인공이 돼 각자의 감상을 끌어낼 수 있다.
전시장 한가운데 스크린에서는 영국작가 제임스 페터슨의 드로잉 애니매이션이 펼쳐진다. 작가가 따로 그린 작품을 한 화면에 투사한 것인데 오글거리는 선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더라도 '찾아보려 노력하길' 권하는 작품이다. 빛을 뿜는 탁자에 놓인 문준용의 설치작품은 관객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 투명한 큐브는 광원(光源)이고 흰색 큐브는 그림자를 만드는데, 이들을 움직이면 새ㆍ사람ㆍ나무ㆍ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실과 가상의 충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를 조작하는 관객은 마치 조물주가 된 듯한 기분이다.
이외에 동서양의 영화ㆍ드라마를 짜깁기해 독특한 감정을 추출해 낸 박정혁, 시집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의 시구를 해체해 벽에 붙인 손정은, '우연'을 소재로 작업한 최기창을 비롯해 세계 종말 이후 살아남은 커플을 주제로 한 줄리아 포트, 외바퀴 자전거 곡예사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토마스 힉스, 터치스크린 조작으로 관객과 캐릭터의 대화를 유도한 뱅상 모리세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기획의도와 달리 설명 없이는 다소 난해한 전시다. 하지만 생각하도록 자극하는 게 예술의 힘이자 역할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전시이기도 하다. 2월17일까지. (02)880-9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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