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상의 극적 타결이 중동판 동맹지도를 더욱 새롭게 재편하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 동맹·적대관계가 무의미해진 대신 종파 갈등과 정권 간 대립, 권력다툼 등이 난수표처럼 얽히고설키면서 중동정세가 더욱 복잡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주도의 주요6개국(P5+1·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 간 핵협상 타결과 관련,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보도를 통해 "미국의 중동정책이 매우 복잡한 퍼즐처럼 풀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과 미국은 지난 1979년 테헤란의 미 대사관 점거 사건을 계기로 36년간 외교관계를 단절해온 사이다. 이와 달리 미국은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 이란의 최대 라이벌이자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핵협상 타결은 이슬람의 전통적 종파 갈등을 대표하는 사우디와 이란 간 대립관계에서 미국의 지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과 중동 2강 간 흐릿해진 우호-대결관계는 다른 중동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소요사태와 맞물리면서 매우 풀기 어려운 권력함수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예멘이다. 예멘에서는 1월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후티 반군 세력과 이후 남부 항구도시 아덴을 새롭게 거처로 삼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 세력이 주요 지역 곳곳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다. 후티 반군은 이란의 물밑 재정·군사지원을 받고 있는 단체로 사우디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예멘 북부 지역을 접수했다. 최대 숙적 이란을 등에 업은 세력이 자신의 발밑에 있는 예멘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것을 묵과할 수 없는 사우디는 수니파 동맹국들과 함께 지난달 말 이후 현재까지 예멘 내 후티 거점을 공습하고 있다. 사실상 예멘을 무대로 '사우디 대 이란'의 대리전이 치러지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예멘 사태를 놓고 난처해진 게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예멘을 무대로 한 알카에다 계열의 핵심인 알카에다아라비아반도지부(AQAP)를 봉쇄하기 위해 기존 하디 정부를 통해 기밀정보를 습득해왔고 군사·재정지원도 해왔다. 이러한 하디 정부를 쿠데타로 축출시킨 후티 반군의 배후 조종자(이란)와 핵협상을 벌였고 이를 통해 관계개선을 도모하고 있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미국의 최고 우방국 가운데 하나인 이스라엘은 이란을 최대 위협국으로 본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인 하마스를 이란이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협상 타결 직후 이스라엘 정부가 "역사적 실수로 기억될 것"이라며 강력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이란 문제와 관련, 노골적 갈등을 표출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서로를 좋아하지도 신뢰하지도 않는 게 분명하다"며 "더 중요한 것은 두 정부의 세계관과 이해관계가 완전히 다르고 이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타임지는 보도했다.
난마처럼 꼬여 있는 중동의 권력지도는 수니파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를 둘러싼 대결 구도에서도 나타난다. 이라크·시리아에서 준동한 IS에 맞서 미국은 지난해 말 이후 주요 동맹국들을 규합해 공습을 위주로 한 IS 격퇴 전략에 나서고 있다. 이는 미국이 제1축출 대상으로 거론해온 독재자이자 이란을 최대 후원자로 두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결과적으로 도와주는 꼴이 된다는 점에서 워싱턴 외교가 사이에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직 내무부 당국자 출신인 타마라 코프만 위트스 브루킹스연구원은 "퍼즐이 돼버린 미국의 중동정책이 행정부의 일관된 정책결여 탓인지, 아니면 이 지역 내 권력다툼의 복잡성 때문인지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지만 결국 두 가지 모두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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