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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3월26일] 세실 로데스


[오늘의 경제소사/3월26일] 세실 로데스 권홍우 편집위원 다이아몬드와 학살, 흑백차별과 전쟁, 그리고 장학금. 난집합 같지만 세실 로데스(Cecil Rhodes)가 남긴 궤적이다. 목사의 아들로 1853년에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던 로데스는 17세 때 폐가 나빠 요양차 찾은 남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촌에게 돈을 빌려 시작한 사업의 결과는 대박. 운보다도 적극적인 인수합병 전략을 구사한 덕이다. 순식간에 대형 광산주로 자리잡은 그는 19세에 돌연 영국으로 돌아갔다. 못다한 학업을 위해서다. 온전한 수업은 단 두 학기밖에 못 채웠지만 옥스퍼드에서 그는 ‘영국에 의한 미개인의 문명화’를 강조했던 사회 비평가 존 러스킨의 강의를 듣고 영국우월주의에 빠져들었다. 유대계 자본인 로스차일드가의 지원으로 세계 다이아몬드 공급량의 90%를 장악한 그는 식민지 의회에 진출, 37세에는 케이프 총독까지 올랐다. 영국보다 4배 넓은 땅을 원주민들에게서 빼앗아 자기 이름을 딴 사설국가 로디지아(Rhodesia)도 세웠다. 승승장구하던 그를 정치적으로 주저앉힌 것은 다이아몬드. 네덜란드계 이민들이 세운 트랜스발 공화국에서 초대형 광산이 발견되자 사병을 동원해 강제로 빼앗으려다 실패한 것. 영국은 그를 비난하면서도 결국 보어전쟁을 일으켰다. 상심하던 로데스는 1902년 3월26일, 49세로 사망했으나 아프리카 종단 철도를 깔겠다던 그의 야망은 사라지지 않아 아프리카 분할경쟁과 1차대전으로 이어졌다. 로데스 사망 106년, 로디지아라는 국명은 없어졌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기억된다. 로데스가 전재산을 헌납해 출발한 ‘로데스 장학재단’은 세계 굴지의 장학기금으로 유명하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로데스 장학생 출신이다. ‘전재산 헌납.’ 어디서 들었던 얘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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