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외교가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전통적인 한미동맹이 삐걱거리고 있고 한중관계에서도 암초가 보인다. 북한과 일본은 납치 피해자 재조사 합의로 우리의 뒤통수를 치며 한미일 대북공조체제를 흔들고 있다.
최근 한미 간에 드러난 두드러진 현안은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 편입 논란. 미국은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은 지난 3일 "미국이 사드의 한국 전개를 추진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사드 배치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해 "우리는 독자적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제(KAMD)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며 거부 의사를 보이자 4일에는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MD) 정책국장이 직접 나서 "한국 정부가 사드의 성능과 가격을 알기 위해 정보를 요청했다"고까지 말했다.
반면 MD에 대한 중국의 반발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미사일방어체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 친강 대변인은 "한반도 MD 배치는 지역안정과 전략적 균형에 이롭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은 보다 직설적인 논평을 내놨다. "한국이 사드를 받아들일 경우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6자회담 재개조건을 놓고도 미국 측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이달로 예상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우리가 6자회담 재개조건을 완화하는 등 중국 측의 입장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미국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MD 편입·6자회담 등 시험대 올라
최근 우리 측 고위관계자는 워싱턴에서 미국 당국자와 회담 후 6자회담 재개 문턱을 낮추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핵개발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하겠다는 병진노선을 채택한 국가와는 의미 있는 비핵화 대화를 할 수 없다"며 북한의 노력 없이는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 후 우리의 6자회담 재개 문턱이 낮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었다.
미국은 이미 중국을 중시하는 듯한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경고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해왔다. 지난해 12월 방한한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박 대통령과 만나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현재 한미 간에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시기 재연기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다. 정상회담 등을 통해 전작권 전환시점(2015년 12월)을 다시 연기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연기할지는 오는 10월까지 협상하기로 했다. 미국의 MD 편입 요구 등이 이러한 전작권 협상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북일 간의 납치 피해자 재조사 합의 역시 우리 외교를 흔들었다. 북일 간의 합의에 따라 대북제재를 위한 전통적인 한미일 공조가 위기를 맞았다. 북한은 최근 일본뿐 아니라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도 적극 나섰다.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이 올 3월 방북하는 등 북·러 관계가 최근 급격히 좋아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서방제재로 유럽과의 협력이 막힌 러시아가 동아시아 협력을 확대하면서 북한과의 교류 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반도 주변 4강·北 관계 재점검을
북한의 이 같은 행보는 그 자체적으로 외교적 고립 탈피와 경제발전을 위한 재원마련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지만 중국을 의식한 것일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북한 김정은의 방중을 허락하지 않는 등 김정은 정권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해왔다. 북한의 일·러 관계개선은 이에 대한 압박카드로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북중 간의 관계가 예전처럼 긴밀하지 않다 해도 그간의 역사적 유대 등을 볼 때 파국적인 상황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결국 그동안 동북아에서 북한이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모양새였다면 역으로 이제는 우리가 고립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즉 북한을 매개로 북·일·러·중이 새로운 구도로 연결되는 모양새다. 더욱이 최근 중국과 러시아는 수년간 끌어온 가스협상을 타결하는 등 협력강도를 높이고 있다.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 역시 MD 문제에서 나타나듯이 전과 같지 않다.
외교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금기'도 있을 수 없다. 한반도 주변 4강과 북한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때다.
/안의식 정치부부장 miracl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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