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속의 동물인 유니콘이 인류의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기원전 400년부터다. 페르시아와 그리스에서 의사이자 역사가로 활동한 크테시아스는 유니콘을 이마에 뿔이 하나 달린 말이나 염소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로 묘사하고 있다. 유니콘은 이후 고대 메소포타미아뿐만 아니라 인도와 동남아·중국의 신화에도 종종 나타난다.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 그림 등에 등장했던 유니콘이 최근 스타트업 업계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유니콘 기업'이라는 용어가 심심찮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을 뜻하는 이 용어는 지난 2013년 11월 미국 벤처캐피털 카우보이벤처스의 설립자인 에일린 리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엄청난 몸값을 지닌 스타트업 기업이 상상 속의 동물인 유니콘처럼 보기 드물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규제 완화와 창업 생태계 조성에 나서면서 유니콘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정보업체인 CB인사이트에 따르면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유니콘 기업은 무려 114개에 달한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훌륭한 창업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미국이 69개로 가장 많고 중국(15개)과 인도(7개)·영국(5개)이 뒤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는 소셜커머스 업체인 쿠팡(17위)과 모바일서비스 업체인 옐로모바일(106위) 2개만 포함됐다.
美·中 등 창업대박 속 한국만 왕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창업 생태계 조성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의욕적으로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기업가치 20위 안에 든 유니콘 기업 가운데 5개가 중국 기업이다. 휴대폰 제조업체인 샤오미가 460억달러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면서 전체 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핀테크 업체인 루진숴가 9위, 드론 제조업체 DJI이노베이션이 11위, 택시앱 업체 디디콰이디가 13위, 전자상거래업체 메이퇀이 15위를 차지했다.
창업 시장에서 중국의 부상은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핀테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의 경우 핀테크에 대해 특별한 사전 규제가 없어 은행과 통신사 등 기존 사업자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중국에서는 알리페이 같은 핀테크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1,000개가 넘는 개인 간 대출(P2P) 업체들이 은행과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미국이나 중국과는 딴판이다. 우리는 창업과 관련해 일일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놓고 있어서 규제의 그물망을 피하기 어렵다. 핀테크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외환거래를 은행에만 허용하고 있고 P2P대출도 대부업 등록을 해야 가능하도록 돼 있어서 핀테크 업체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좁다. 정부가 뒤늦게 핀테크 기업도 해외 송금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도권은 이미 중국 등으로 넘어가 버린 상황이다. 사정은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무인자동차나 원격의료·무인항공기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창업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를 하고 있다. 법에 나열된 몇몇 개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창업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규제의 그물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언론 등에서 문제 제기를 하면 찔끔찔끔 풀어주다 보니 규제 개혁의 효과도 떨어지게 된다.
규제 유예제도 등 인프라 조성 필요
우리도 이제 창업과 관련한 규제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기업들이 꼭 지켜야 할 큰 울타리만 만들어놓고 그것을 벗어나지 않으면 마음 놓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신 보안사고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기업이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사후책임을 묻고 있다. 우리나라도 사전에 온갖 규제를 통해 창업의 싹이 처음부터 트지 못하도록 하기보다는 초기에는 일단 자유롭게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하되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사후규제하는 쪽으로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영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창업벤처 규제 유예제도' 같은 획기적인 규제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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