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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도 못한 일… 이젠 진짜 제사 지낼수 있어"

62년만에 고국 품 안긴 故 이갑수·김용수 일병 가족

전사한 지 62년 만에 조국의 품에 안긴 이갑수 일병의 딸 숙자(왼쪽)씨와 아들 영찬씨가 부친의 영정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국방일보

6ㆍ25전쟁 중이던 지난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호전투 등에서 전사한 국군 유해 12구가 62년 만에 25일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조국의 품에 안겼다. 이들은 6ㆍ25 당시 국군으로 입대해 미군에 배속됐던 카투사로 미국이 북한과 합동으로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2명(미7사단 15전차대대) 중 인식표가 함께 발견돼 유가족을 쉽게 찾은 고(故) 이갑수 일병의 큰딸 숙자(69)씨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는 얘기를 듣고 전날 저녁까지도 남의 이야기를 듣는 심정이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해 정말 마음이 뭉클하다"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숙자씨는 "매년 현충일이면 아버지를 생각했다. TV로 참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버지가 기억난다"고 말했다. 아들 영찬(65)씨도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이제서야 진짜 (제사를) 모실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기뻐했다.

191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이갑수씨는 34세에 아내와 7세ㆍ4세 남매를 뒤로하고 늦깎이 입대를 했다. 그래서 두 남매는 "아버지가 저를 굉장히 귀여워해주셨다는 것 외에는 뚜렷한 기억이 없다"(숙자씨)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영찬씨)며 안타까워했다.

신원이 확인된 2명 중 다른 1명인 고 김용수 일병은 1933년 부산생으로 18세의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 7사단에 배속돼 북진하다 장진호전투에서 전사했다.



지난해 숨진 김 일병의 형이 생전에 동생의 유해를 찾겠다며 유전자(DNA) 감식용 혈액을 채취한 것이 신원 확인의 결정적 단서가 됐다. 김 일병의 유해를 맞이한 장조카 김해승(54)씨는 "아버지께서 동생을 찾기 위해 DNA 채취를 직접 하셨다"며 "하지만 당시 유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작은아버지에 대해 "아버지께서 입대를 같이해서 동생과 함께 후방으로 가자고 권유했지만 '형님은 가족을 지켜라, 난 나라를 지키겠다'며 전방으로 가셨다"고 말했다.

이번에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유해 12구가 송환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국방부는 아직 북한 지역에 3만~4만여구의 국군 전사자 유해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영찬씨는 "(유가족들이) 북한에서 돌아가신 (국군 전사자) 분들의 유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며 "하루빨리 통일이 돼 전사자 가족들이 유해를 찾았으면 좋겠고 그 전이라도 유해 봉환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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