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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BT·IT의 만남… '시스템생물학'시대 열다

조광현 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 석좌교수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부둣가. 뭔가를 초조히 기다리던 나룻배 위의 사내들 눈앞에 부표를 단 나무상자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더니 이내 수면을 가득 메웠다. 갱단이 경찰의 단속을 피해 밀주가 든 나무상자를 소금자루에 매달아 물밑에 숨겨놓은 후 소금이 녹을 때를 기다렸다가 물 밖으로 꺼낸 것이다. 지난 1920년대 금주법으로 밀주가 성행하던 미국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의 한 장면이다.

기업들은 차세대 먹거리가 될 신성장동력을 애타게 찾는다. 그러면서 과학기술 변화를 주목하고 최근에는 생명과학(BT)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한다. 그러나 BT는 기초과학 성격이 강하고 가시적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성공률이 낮은 연구개발과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한다.

가령 신약개발은 평균 15년이 넘는 개발기간과 95% 이상의 실패확률을 이겨내야 한다.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다국적 제약회사만 가능한 일이고 후발주자가 앞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BT에 정보기술(IT)이 접목되면서 산업화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기존의 접근법으로 풀 수 없던 복잡한 생명현상을 IT와의 융합으로 해결했다. 생명체를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제어 시스템으로 간주하고 수학 모델링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 등을 도입해 접근하는 시스템생물학이 주인공이다.



BT는 지난 반세기 동안 눈부신 발전과 함께 방대한 실험 데이터를 쌓았다. 빅데이터는 자료에 대한 모델링과 분석으로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많은 성과를 거뒀다. 발 빠른 제약회사들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시스템생물학을 신약개발에 접목했고 최근에는 소규모 벤처회사들까지 신약개발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또 신약개발은 물론 신약 재창출, 기능성 화장품, 개인맞춤형 치료, 헬스케어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중 메디컬소프트웨어 개발은 고부가가치 핵심산업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이런 흐름은 BT에 IT를 융합한 시스템생물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스템생물학이 BT 산업화의 촉매제가 된 셈으로 BT를 기초과학의 연못에 가둬놓았던 소금자루의 소금이 녹으면서 산업화라는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기도 하다.

만약 평온한 수면만 바라보고 물밑 소금자루의 소금이 녹는 줄 모르고 지나쳤다면 시간이 지난 후 수면 위로 떠오른 BT산업은 모두 다른 주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당장의 성과에만 매달리면 물밑의 변화를 감지할 수 없다. 천연자원이 절대 부족한 한국의 유일한 자원은 뛰어난 인재다. 특히 IT 인재풀은 어떤 선진국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런 IT 인재들을 BT산업화에 활용한다면 제2의 도약을 이어갈 수 있다. 대한민국도 수면 아래의 소금자루를 꿰뚫어보는 혜안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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